▲다회용 마스크를 쓰고 해변을 청소하는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
시셰퍼드코리아
코로나19 생활 쓰레기가 향한 곳은, 바다
'이 시국'에 마스크를 비롯한 쓰레기들은 갈 곳을 잃었다. 우리나라만 봐도, 전국 쓰레기의 30% 가량을 처리했던 인천 수도권매립지는 안 그래도 넘쳐 나는 쓰레기에 항복을 선언한 지 오래다(2025년까지만 운영). 소각장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한 일이다. 매일 같이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컵에 커피를 마시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마법사라도 나타나 마스크를 치워주기라도 바란 것일까.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쓰레기들 여정의 끝은 애석하게도 항상 바다다.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깊은 심연처럼 보이다가도, 또 말간 물색에 빛나는 햇살을 잔뜩 머금은 채 찰랑이는 그런 바다.
일본과 미국 하와이섬 가운데, 방추형의 날렵한 갈라파고스 상어가 바닷물을 쏜 화살같이 가르며 지나간다. 그 위로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한 나라가 있다. 영토가 프랑스만 한데,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지도에 없는 나라라니, 수도 없이 많은 해적들이 위대한 항로에 도전하는 환상의 섬일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환장의 섬, 바로 GPGP다.
이 나라의 진짜 이름은 'Great Pacific Garbage Patch'(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 공식 이름은 'The Trash Isle'(쓰레기섬)이다. 수억년 동안 지형이 이동하고 변형하며 생긴 섬은 아니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1997년 여름, 찰스 무어는 미국 LA부터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 중에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발견했다. 바다로 버려진 전 세계 쓰레기들이 원형 순환 해류와 바람의 영향 등으로 밀려와 하나의 거대한 섬을 이룬 것이었다.
2018년, 이 쓰레기섬을 공식 나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UN도 이를 승인했다. 공식 나라로 지정하면, 이 대환장 쓰레기 섬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영국 배우 주디 덴치가 나라의 여왕이 됐고, 미국 프로 레슬러 출신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이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영화배우 크리스 햄스워스, 마크 러팔로 등 유명 인사들이 국민이다.
유명세를 얻었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1조 8000억 개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이뤄진 GPGP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쓰레기섬은 슬금슬금 전 세계 바다를 먹어 치우며 영토를 확장해갔다. 처음 발견했을 땐 우리나라 면적의 절반 정도의 크기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보다 약 16배 커졌다. 그만큼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 양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은 GPGP의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GPGP는 역사 속 여느 제국주의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영토를 키워나가고 있다. 쓰레기섬은 북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 남대서양에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인천과 통영, 제주 앞바다에도 존재한다. 환경단체 오션스아시아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일회용 마스크 15억 6000만개가 올 한해 전 세계 바다로 밀려 들어갔다. 무게로 따지면 최대 6240t으로 예상된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발생한 플라스틱의 약 75%가 매립지를 가득 채우고 바다에 떠다니며 오염을 일으킬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 국방부? 누가 우릴 지켜주나요?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본다. 쓰레기섬이 이렇게 영토를 확장해가다 보면, 엄청난 쓰레기력을 토대로 정치, 경제, 군사적인 지배권을 다스리게 되는 제국주의가 실현되진 않을까. 쓰레기로 탄생한 기이한 생명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화학 침전물, 눈코입을 차마 뜨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악취와 오염, 그 힘을 바탕으로 이 쓰레기섬은 지구 전체를 식민지화하게 되진 않을까.
영 터무니 없는 상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기후위기'나 '지구온난화'는 이름 없는 가해자가 되어, 돈이 없는 나라나 약자를 상대로 실체 없는 공격을 무자비하게 해대고 있다.
그런데 수상한 게 있다. 다른 나라와의 영토 싸움에서는 수천억 원과 사람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각 나라 정부들이, 쓰레기의 식민지화 문제에 대해서는 참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 윤리와 실천 따위에 기대는 모습,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석탄발전 투자를 곁들인 '그린뉴딜'을 내세우는 모습 등이 그렇다.
지난 6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와 국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달성하려는 글로벌 협의체에 나온 정부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시민들은 개인의 몫을 누구보다 잘 해낼 테다. 정작 우리가 궁금한 것은,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며, 쓰레기섬의 식민지화로부터 우리를 잘 지킬 것인지 여부다.
당장 우리나라가 나서서 전 세계 모든 쓰레기섬을 해결해 버리라는 게 아니다. 그럴 힘도 없다. 다만, 적어도 한국이 쓰레기섬의 부흥에 일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덩치가 커진 쓰레기섬은 돌고 돌아 우리 국민의 생명을 잔혹하게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람과 태양을 만나며 잘게 부서지고, 이 미세플라스틱은 공기처럼 생태계 곳곳에 스며든다. 이걸 먹은 생선이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올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 사이 생태계는 이미 크게 오염되어, 산불과 해일, 가뭄과 폭우가 매일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접시 위 생선을 우아하게 칼질할 여유 따윈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 시국'에 무슨 환경 얘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 역시 묻고 싶다. 산업혁명과 성장을 논하던 인간들이 하루에 수십만 명씩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고작 석유화학천으로 코입을 덧대게 하는 것보다는 더 잘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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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제주 앞바다에 생긴 '환장의 섬'이 보내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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