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작가 <반반 무 많이>
서해문집
민주네 떡볶이라 불리는 포장마차는 1980년대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뽑기, 달고나, 어묵, 떡볶이, 쫄쫄이 등을 팔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잘게 썰린 밀떡에 파가 살짝 말려 있으면 감칠맛이 난다. 포장마차 한쪽 구석에서 달고나를 녹여 먹고, 국자에 물을 끓여 먹던 기억 이면에는 민주화 운동의 치열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희와 비슷한 또래였던 나는 알지 못했다.
데모에 참가해서 경찰서에 잡혀가는 삼촌과 데모를 말리는 엄마 사이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으리라. 동네의 대학생 형들에게 '너 데모 같은 거 하지 마라'라는 말이 아줌마들의 인사였던 시기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데모라는 말과 함께 따라다니던 것은 최루탄이었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게 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절대 눈을 비비면 안 돼! 비비면 더 아파!' 찬물을 틀어 놓고 얼굴을 씻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는 1990년대에 찾아온 IMF 금융 위기에 관한 이야기다.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고, 잘 나가던 회사가 문을 닫고, 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빚에 허덕이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자주 들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을 모았다. 팔 수 있는 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의 모습.
이야기 속 현식이와 진우는 지금은 성인이 되어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이 위협하는 지금은 또 어떤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라가 저 모양인데 치킨 시켜 먹을 맛이 나겠어." 현식은 1년 가까이 잊고 살았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치킨집은 절대 망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또 실패를 맛보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 무너지면 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식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 '반반 무 많이!' 중에서
<반반 무 많이> 속에 들어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음식과 함께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는 어떤 음식이 우리의 피로함을 달래줄 수 있을까.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이야기도 기대된다.
반반 무 많이
김소연 (지은이),
서해문집,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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