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선감학원 교직원과 교직원 가족 사진
이민선
박물관과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선감학원사건피해자신고센터(아래 신고센터)에는, 피해자 신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년여간 약 200명이 신고를 마쳤다.
기자가 박물관을 방문한 20일 오전에도, 3명이 신고센터를 찾았다. 이미 신고를 마친 피해 생존자 2명이 그 옛날 고락을 함께한 벗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김아무개(70세)씨는 몇 년 전 건설현장에서 머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했다. 벗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신고센터가 있는 안산 대부도 경기창작센터까지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떼었고 손 떨림이 심해 자기 이름을 쓰는데도 진땀을 흘렸다. 말도 어눌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1964년께 선감학원에 잡혀 와 4년 만에 탈출해 자유를 찾았다. 학교에는 갈 수 없었고 논과 밭, 취사반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은 아이를 먼발치로 본 뒤에는 무서워서 밤에 화장실도 가지 못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빡빡머리를 한 사진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납니다. 우리가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죄가 있다고 죄수 취급을...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일어나면 안 됩니다."
그가 신고를 마치며 어눌한 말투로 힘겹게 남긴 말이다.
선감학원은 소년 감화원이란 이름으로 존재한 강제수용소다. 일제가 불량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8세에서 18세 소년을 '감화(感化)' 시킨다는 목적으로 세웠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는 경기도가 운영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는 미군이 피난민과 전쟁고아 수용시설로 이용하다가, 1955년 미군이 물러나면서 다시 부랑아 수용소로 운영됐다. 군사독재 시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2년에야 사라졌다.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선감학원과 관련한 피해 사실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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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역사 박물관 새 단장... "아이들 빡빡머리 보니 눈물이 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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