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갓 딴 야채와 과일
이준수
마트에 와서도 한결 마음이 가볍다. 야채 코너에서는 파프리카와 버섯만 집어 든다. 상추와 양파를 비롯한 나머지 채소는 이미 밭에서 뽑았다. 정육 코너에서 발길을 멈췄다. 붉은 고기를 잘 먹지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야외 바비큐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사기로 했다.
일 년에 몇 번쯤 붉은 고기를 직접 사서 먹어야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것이다. 고기를 담아가기 위해 빈 플라스틱 용기를 챙겼다. 그런데 우리는 고기 구입을 단념하고, 나중에 동네 정육점을 다시 들러야만 했다.
예전에는 대형 마트에서도 고기를 원하는 만큼 무게를 달아 잘라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모든 육류가 개별 포장되어 있었다. 다회용 포장용기를 내밀 여지조차 없다. 이렇게 하면 매번 손님의 요구에 맞춰 응대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인건비가 절감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딘가 기분이 씁쓸해져서 끝내 고기를 사지 않았다.
생수 코너를 지나쳤다. 대신 집에서 주전자형 정수기를 챙겼다. 수돗물을 걸러 먹으면 된다. 이동형 정수기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여행은 요리까지 해 먹어야 하므로 물이 많이 필요하다.
만일 생수였다면 2L 사이즈로 최소 4통 이상은 구입해야 했을 것이다. 비록 사지는 않았지만, 라벨이 없는 생수 제품을 보면서 기업의 대응이 기민하다고 느꼈다. 소비자가 원하면 기업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꾸 요구하고, 정당하게 항의해야 한다.
캔 커피나 컵 커피도 제외했다. 대신 텀블러와 드립백 커피를 챙긴다. 숙소에 전기 포트가 있으므로 커피를 내려 마시면 된다. 드립백 봉지와 여과지 쓰레기가 소량 발생하지만 비닐은 재활용이 가능하고 여과지는 종이라 썩는다. 그 밖의 식기류는 모두 숙소에 갖춰져 있으니 일회용 코너도 패스다. 잠재적 쓰레기가 줄었다. 여행 준비가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