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두 곳과 고등학교 두 곳,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 한 곳이 밀집되어 있는 등굣길에 도배하다시피 차별금지법 반대 현수막을 내걸어두었다.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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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현수막... 이게 말이 됩니까?에서 이어집니다)
의지만 있다면 그리 번거로운 일도 아닐 텐데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청과 지자체에 신고했는데도 등굣길 현수막은 열흘도 넘게 그대로 내걸려 있다. 현수막 철거를 담당하는 지자체 시설 관리팀은 전가의 보도처럼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만 댔다.
심지어 해당 공무원은 답변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혐오를 조장하는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했더니, 대뜸 걸려 있는 곳이 사유지 아니냐고 물었다. 사유지일 경우 임의 철거가 어렵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사유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일까.
그들에겐 아이들이 등하교 때마다 접할 혐오 표현보다 철거 관련 규정이 더 중요하다. 그들에게 '불법 현수막'이란 내용의 불법성보다 게시대가 아닌 곳에 걸려 있거나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신고된 걸 의미할 뿐이다. 특별 단속 기간이 아니면, 신고 없이 철거 없다.
현수막을 내건 곳이 대형 교회라는 사실이 그들을 멈칫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 종교 관련 시설은 지자체는커녕 중앙 정부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 됐다. 코로나 와중에서 정부의 강력한 권고에도 상당수의 교회에서는 대면 예배와 집회를 강행했다.
유력 정치인들조차 교회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는데, 하물며 일개 지자체 앞에선 '갑'이라 해도 무방하다. 등록된 신자 수가 많을수록 위세가 커지고, 지역에서는 여론을 주도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된 현수막들은 대형 교회 주변에 주로 내걸렸다.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개신교단의 사립학교도 막강하긴 마찬가지다.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사립학교는 교육청의 지시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콧방귀를 뀌는 일이 다반사다. 사립학교법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말할 것도 없고 초중등교육법시행령도 무력화시키는 '절대 반지'다.
이태 전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과 성적 조작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한 사립학교의 사례를 통해 다시금 사립학교법의 위력을 실감했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들은 교육청의 징계에도 버젓이 교장과 교감직을 수행하고 있다. 인사권이 학교법인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감의 승인이 나지 않아 법적으로는 교장 대리와 교감 대리다.
교회와 학교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이고, 교육청과 지자체는 별다른 의지가 없어 보인다. 차일피일 미뤄지다 보면, 아이들은 현수막에 적힌 내용을 가랑비에 옷 젖듯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혐오는 인권의 가치를 짓밟는다.
보다못해 직접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