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길의 숭실전문학교 졸업사진박 검사의 아들 박경진 목사의 요청으로 숭실대학교가 찾아낸 박찬길의 졸업 사진
박경진 목사 제공
살해당한 박 검사와 그 부친
수사 기록에는 여순사건 당시 박찬길 검사와 방기환 서기의 행적과 총살, 경찰이 자행한 박 검사 부친 살해, 사건 조작 은폐에 이르기까지 참혹한 증언들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이 터지고 여수 14연대가 순천으로 진격할 무렵 순천지청에서 숙직하던 직원들은 새벽 3시께 비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그 뒤 이른 아침부터 총격 소리가 들리자 출근한 직원들은 저마다 피신하기 시작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그 무렵 박 검사도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L씨의 집 장작더미 속으로 숨었다. 23일 아침 9시경 그의 동료 Y씨가 찾아와 '반란이 진압됐다'는 소식을 전해줘 밖으로 나왔고, 그 동료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진압군을 만나 군인 차량에 타게 됐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순천북초등학교였다. 그곳에는 진압군의 명령에 따라 벌써 수많은 시민이 모여 있었다. 경찰 진압대는 시민들을 직업별로 구분한 뒤 '양민과 비양민(좌익)'으로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박 검사는 동료 직원들을 만나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까지 쏟았다고 한다.
이때 사복과 정복을 입은 4~5명의 경찰이 몰려오더니 박 검사를 지목하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마구 구타하기 시작하였다. 최천 부청장도 그를 구두 발로 구타하고 뺨을 쳤다. 이 소식을 들은 박 검사 부인이 "어찌된 일이냐" 하였지만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들은 곧 박 검사를 본부석 뒤쪽으로 끌고 갔기에 대중들은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마침 황두연 의원이 그곳에 왔기에 박 검사 부인은 황 의원에게 남편의 구제를 호소하였다. 이에 황 의원은 경찰 책임자인 최천에게 가서 "현직 검사를 이렇게 폭도 혐의로 구타하면 안 된다"며 방면을 요구하였다. 최천은 "경찰들이 나쁜 놈이니 죽여야 한다고 해서 붙들어 두었으니 두고 보자"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미국인 구례인 선교사(John Crane, 1888~1963)도 "박 검사는 내 친구이고 기독교인이며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신원 보증을 할 테니 풀어 달라"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를 최천에게 전하였다. 최천은 이 탄원도 묵살하였다.
이튿날인 24일 오전 8~9시 사이 경찰 진압대는 박찬길 검사, 방기환 서기를 비롯한 21명을 총살했다. 운동장에서 날밤을 새운 시민들은 총소리만 들었지 그 현장은 보지 못하게 해서 볼 수 없었다. 증언에 따르면 그 총살 현장에는 최천과 경찰 30명 남짓이 있었다. 피의자 박○○은 5.10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박 검사에 대한 악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박 검사가 '인민재판장을 하였다'거나 '좌익을 관대히 처리한다'는 경찰의 명분은 꾸며낸 거짓에 불과하였다. 박 검사의 사상적으로는 '기독교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는 게 그의 동료 증언이다.
경찰 진압대의 학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순천경찰서 사찰계 주임 배○○은 그의 계원 박○○에게 지시해 29일 집에서 박 검사 부친 박인서를 체포하여 끌고 갔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박찬길 검사 부친이다"라고 하자 경찰들은 너도나도 달려들어 그를 구타하였다. 박 검사 부친은 그 구타로 세 시간도 안 되어 사망하였다. 그러자 경찰은 그 시신을 트럭에 실어 모처에 유기하여 유족들이 시신 수습조차 못하게 하였다. 나아가 박 검사 부친이 경찰 아무개를 반란군에게 밀고해 처형당하게 했다는 허위 문서를 작성해 사건을 조작하였음이 드러났다. 이는 피의자 박○○의 자백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자백까지 한 이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박 검사의 아들 박경진(75) 목사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억울하게 처형당한 기록이 나와서 다행이다"라며 "중요한 건 명예회복이 되는 거다. 저도 나이가 70대 후반이 되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생전에 아버지 명예가 회복되길 기원하고 정부도 사건을 덮으려 말고 유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에 협력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박찬길 검사 총살사건을 다룬 수사기록이 72년 만에 드러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여순사건 당시 경찰 진압부대의 무분별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재조명할 길이 열렸다. 마침 지난 6월 29일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이라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규명 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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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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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길 검사 총살 사건' 수사기록 72년 만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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