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마을 앞 꽃무릇함평군 오두마을 앞 꽃무릇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대윤
꽃무릇 축제 시기가 되면 해보면의 10개 법정 '리'에서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곤 한다. 면민의 날 행사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이다. 면민의 날 행사는 주민들 내부적으로 준비한 행사이기 때문에 주민 누가 오더라도 앉을 자리 먹을 음식은 준비되어 있다. 지역민들이 삼삼오오 준비를 해 둔 것이다.
꽃무릇 축제는 한국 자연백경에도 들어가는 터라 나름 인기가 있다고 느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행사는 흔히 지역민들이 소외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꽃무릇 축제는 가장 좋은 자리에 면민들을 위한 천막,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걸 보고 좋은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간이 장터 및 시설, 무대도 마련되어 있지만 주민들이 함께하는 축제이기에 더 오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면민의 날 행사에 온 어른들은 음식을 바삐 나르기도 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이웃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먹고 놀고 즐기곤 했다.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런 축제가 아니면 다른 마을 주민들과 인사 나눌 자리가 마땅히 없다. 품앗이를 하는 경우도 많지는 않고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등의 행사에도 보통 참여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주민들이 이런 축제 자리에 참여할 동기가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첫 면민의 날 행사에 오니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음식 수발도 들고 주변에 아는 분들 인사를 드리고 나니 크게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런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지루한 것 같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부모님이 다른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눌 때면 마땅히 할 게 없고, 탁 트인 공간에서 혼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놀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20대이면서 상투도 틀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주민들이 나를 '성인'으로 인정해 주시지만 '어른'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고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곤 했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 어르신들과도 함께 자리를 함께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항상 그들을 챙기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 용천사 한 바퀴라도 산책할 양으로 일어섰다. 옆 마을 아이도 눈에 밟혀 같이 챙기기로 했고 그 아이의 친구까지 챙기기로 했다.
먼저 말 걸어주고 이끌어 주는 무리가 없었는지 처음보는 아이들도 금방 나를 따르곤 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늘어나다보니 산책길에 나선 아이들이 나를 빼고 6명이나 되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 3명, 옆 마을 아이 1명, 옆 마을 아이 친구 1명, 모두 처음 보는 서울 사는 아이 1명 이렇게 6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