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표식을 추가한 '엘리제를 위하여' 악보①, ②, ③으로 표시한 곳에는 7도 도약이 있다. 이러한 순차적 7도 도약은 ④에서 레-도 7도 도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임승수
①, ②, ③이라고 표시한 곳에는 각각 솔-파, 파-미, 미-레의 순서로 7도 도약이 있다. 이러한 순차적 7도 도약은 ④에서 레-도 7도 도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런데 만약 ④에서 '레' 대신 '미'로 바뀐다면? 미-도 6도 도약이 되어 앞선 세 번의 7도 도약과의 연관 고리가 끊어진다.
물론 '미'를 선택한 판본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내가 팔랑귀라 그런지는 몰라도, 일련의 자료를 접하고는 '레'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판단을 내린 후 유튜브에서 연주를 더 찾아보니, 쇼맨십 강한 피아니스트 랑랑도 '레', 진중한 학구파 알프레드 브렌델도 '레'다. 그렇구나! 랑랑과 브렌델도 내 편이니 든든하지 않은가.
그래 봐야 한 음 차이인데,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의식해서 듣지 않으면 대부분 모르고 지나가는 데다가, '레'를 '미'로 쳤다고 해서 곡의 느낌과 분위기가 크게 변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소신껏 '레' 건반을 누르기까지의 고민
하지만 음향학으로 따져봐도 그렇게 단순한 사안은 아니다. 문제의 '미'는 330Hz이며, '레'는 294Hz다. 알다시피 330Hz면 1초에 고막이 330회 진동하는 것이고, 294Hz면 294회다. 베토벤이 '레'를 적어넣었다면 1초에 고막을 294번만 흔들라는 건데, 왜 멋대로 330번을 흔드는가. 무려 36회나 많지 않은가!
화성적으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라면 해당 부분은 화성적으로 미-솔#-시가 되어, 라단조(A minor) 조성 체계에서 딸림화음(V)이 된다. 그런데 '레'라면 화성적으로 미-솔#-시-레, 그러니까 7음 '레'가 추가된 딸림7화음(V7)이다. 베토벤이 딸림7화음을 의도하며 '레'를 사용했다면, '미'로 연주할 경우 베토벤의 본의와 어긋난다.
물론 음악 이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펼칠지도 모른다. 딸림7화음에서 7음은 반음이나 한음 하행(下行)해서 해결되는 게 정석인데, 이 곡에서는 7음인 '레'가 하행해서 '도'나 '도#'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화성법 규칙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니 '미'가 화성적으로 올바른 선택 아니냐는 거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아마도 '미'를 선택한 판본은 그런 부분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이기에는 앞서 언급한 1867년 판본, 1870년 판본, 그리고 1810년 베토벤 자필 스케치 등의 증거물이 지닌 무게감이 너무 크다. 작곡가들이 언제나 화성 진행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작곡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음악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기존 규칙과 틀을 과감하게 넘어서며 진화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엘리제의 정체를 제일 궁금해하는 것 같다.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등에서 <엘리제를 위하여> 항목을 찾아보면 유력 후보로 테레제 말파티 외에 몇몇 여인을 거론하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MBC '서프라이즈'에서도 엘리제가 누구인지를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생뚱맞게도 나는 '레'와 '미'의 실체적 진실이 궁금하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통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 곡을 작곡한 베토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7,450원을 들여 헨레 악보를 구입하고 관련 정보를 찾아 인터넷 바다를 열심히 떠돈 소득이 있어, 이제는 소신껏 '레' 건반을 누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서는 땡전 한 푼 안 나오는 일에 헛심 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도 있으려나.
일단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존중하지만, 그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도 베토벤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아서 그에게 땡전 한 푼 쥐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무언가에 진심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 손익을 따지는 일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태도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고유의 멋과 향기가 있다. 그 풍취를 경험한 이라면 피아노에 대한 내 진심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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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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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이 음은 왜 연주자마다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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