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노화와 그로 인한 질환들을 접하면 마치 생이 추락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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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교직 일을 시작한 터라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나이로 인한 민폐는 절대로 끼치지 않겠노라고. 그런 결심과 노력 때문이었는지 젊은 교사들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들의 빠른 업무처리 속도, 그러면서도 느긋한 여유와 당당함,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막역한 소통까지 그 모두를 받아들였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들과의 시간에서 나는 자존심을 위해 자의식을 버렸다.
나이를 초월한 소통이 익숙해진 탓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나는 젊은 세대와 하나의 그룹으로 엮이는 일이 많았다. 글쓰기 모임도 그랬고 독서토론 모임도 그랬다. 북 큐레이션 모임에서도 이제 막 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젊은 엄마들과 한 조가 되었고, 지역 기자단 모임에서도 20대가 대다수인데 나홀로 50대였다.
모임의 목적에 부합한 화제에 특별히 나이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 않으니 가끔은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도 노년을 고민한다는 사실도, 아이들은 훌쩍 컸고 남은 시간을 나로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이를 언급하지 않으면 모두가 동등했고 그런 것이 좋았다.
최근 갑자기 컴퓨터 글씨가 두드러지게 작아졌다. 선명했던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보이다 말다 했기에 이번에도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며칠을 눈을 깜빡이고 비비며 버티다 결국 내 상태를 인정해야 했고 컴퓨터 화면의 글자 크기를 2퍼센트 키웠다.
진작 간단하게 글자 크기를 키우면 될 것을 뭐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누군가 타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글자의 크기를 무작정 키우지 않는 것은 아직은 괜찮다는 자각이었다. 어차피 교정 시력이니 안경이나 렌즈를 통해 이전에도 조절해왔고, 그렇게 해서라도 남들과 같은 글자의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었는데 지독한 근시에 노안, 최근엔 난시까지 심해진 것이다.
그런 내 상태를 마음으로 인정해야 했다.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키우니 눈이 시원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은 더는 개의치 말자고 생각했다. 주어진 노화에 마음을 허락하면 몸이 따라가고 몸이 따라가면 행동도 따라갈까 봐, 그리하여 나이가 지배하는 상황이 만들어질까 경계했던 것인데 이젠 각각의 단계를 구분해 보기로 했다. 노년의 습관은 불허하지만, 노화로 인한 몸의 변화는 조금은 너그럽게 수용하자고.
50대 후반, 몸의 변화는 매일 새롭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묵직하다. 그러나 내 증상을 가족에게 하소연하듯 일일이 풀어놓지는 않는다. 깊이 생각하고 조용히 병원을 다녀오고 혼자서 수습하는 쪽을 선택한다.
모든 병이 가볍지 않지만 50대의 노화와 그로 인한 질환들을 접하면 마치 생이 추락하는 것 같다. 증상을 인지하는 순간 병은 이미 심각하고 가족에게 말하는 순간부터 곧 드러누워야 된다.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서 수습할 수밖에 없다.
지나고 나니 40대 때의 몸의 변화에 대한 충격은 일정 부분 가족을 향했던 것 같다. 이만큼 힘들게 살고 있다는 하소연이나 투정의 의미 같은. 40대의 노화가 열정적으로 바삐 살아온 삶에 대한 약간의 자기 과시 비슷한 것이었다면 50대의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오십이라는 숫자에 깜짝 놀라 정색하며 나이를 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육십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는 나이를 셈하는 것도 노화도 더는 거부할 수 없다. 가끔 마음이 용납하지 않는 꼰대 기질도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 정말 꼰대 같다는 확인 사살이 들어오면 좌절한다. 젊은 세대와 거친 충돌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노년이 가능할까 진지하게 탐색 중이다.
계속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