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실 의자에 앉아 치료를 받는 아이
류정화
콧속에 상처가 많아서 혈관이 약해져 있었다. 한 달 넘게 계속 코피가 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이와 함께 몇 가지 치료 방법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중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건 콧속 상처 부위를 지져서 소작하는 거였다. 치료 방법을 듣더니 아이가 갑자기 울려고 했다.
"어… 그거 하면 많이 아파요?"
"약간 아플 수 있어."
"무서워요."
"그러면 엄마 아빠랑 잠시 얘기해 볼래?"
의사가 상의할 시간을 주며 자리를 뜨자 아이는 울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눈물도 글썽이며 하기 싫다고 치료를 거부했다. 이비인후과에 오기 전부터 아내와 나는 치료에 관련해서 한 가지 미리 정해둔 것이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치료 방법을 결정하게 하자고. 병원에 오기 전부터 아이한테 치료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네 뜻을 존중할 거라 말해두었다.
이번 병원 치료는 아이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배울 좋은 기회였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아이한테 치료의 장단점을 최대한 쉽게 알려줬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일러줬고, 이 치료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잘못된 선택을 해서 고생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다음번 선택은 더욱 신중히 할 수 있으니까 꼭 나쁜 경험도 아니었다. 이건 큰 치료도 아니니까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하면서 선택 훈련을 시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치료를 안 받고 다른 걸 하면 어때요?"
"항생제 연고를 코에 바르면 약간의 효과는 볼 수 있어."
"다시 코피가 날 수 있어요?"
"응… 상처가 덧나면 코피가 또 터질 수 있어."
"그럼 이 치료를 받으면 어때요?"
"아플 수도 있지만, 코피는 더 안 날 거야."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우리가 존중해 주겠다고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아이가 자기 주도성을 키울 수 있게 부모가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는 오은영 박사의 말을 기억하며 치료 과정에서 아이를 배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한테 스스로 치료 방법을 결정할 수 있게 해줬더니 아이가 처음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충분한 시간 동안에 질문과 응답이 오간 후에야 아이는 드디어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아이가 소작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대신에 내 무릎에 앉아서 치료를 받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내가 흔쾌히 승낙하자 아이의 초조한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다. 의사가 돌아와서 다시 치료를 시작하자 비교적 순조롭게 시술이 이뤄졌다. 놀랍게도 아이는 별로 아파하지도 않고 의연하게 잘 대처했다.
"어른도 힘들어하는 걸 네가 씩씩하게 잘 참았네."
"정말 그래요?"
"어떤 사람은 울기도 해."
"하하하, 약간 따끔한데 참을 만해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모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아이가 치료를 결정하고 묵묵히 치료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독립적 아이로 키우려면
아동 심리학자 로스 그린(Ross Greene) 박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 주면 책임 있게 행동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아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면 그 기술을 배워서 문제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부모인 우리가 많은 걸 대신해 결정해 주고 있었다.
코피를 더 흘리지 않는 며칠이 흐른 후 아이는 조심스럽게 자기가 한 결정이 옳았다고 말했다. 내가 아이 치료 과정에서 나서서 결정해주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키우기 위해서 애써 참았다. 아무리 사소한 아이의 의견이나 불만도 끝까지 경청했다. 아이를 독립적인 자아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다. 아이의 모든 걸 부모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아이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겠다는 태도는 아이가 독립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막아서 바람직하지 않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게 한발 물러나 조언하고 지켜보는 코치가 되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결정에 미숙한 아이가 성숙한 판단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부모의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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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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