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 가까이서 보니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기백이 느껴진다
김형순
1931년생인 박서보는 심근경색, 뇌경색 등 건강상 두 번의 큰 위기를 잘 이겨냈다. 2000년 전까지는 16시간을, 칠순이 넘어선 8시간을 작업했다. 최근에도 지팡이를 짚고 서서 5시간씩 작업을 한다. 한 인터뷰에서 "구순인 이제는 정말 그리는 게 즐겁다"라고 고백한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박서보는 초기 '플러스(채우기)미술'로 시작, 무심과 무위자연의 '제로미술'을 통과한 후, '마이너스(비우기)미술'로 돌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정신적 '자유'를 나눠주는 '치유'의 미술이 되었고, 구순이 되어 마침내 '향유'의 미술에 도달한 셈이다.
그의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좀 설명해 보면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심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그렇게 해서 젖은 한지를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를 만든다. 그게 마르면 거기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다. 선 길이, 형태 등은 미리 엄격하게 구상해둬야 한다.
스스로 경험한 자연경관을 이렇게 연필로 긁어내는 반복행위로 축적된 시간이 겹겹이 쌓인다. 그런 면에서 촉각적이다. 거기에서 작가의 철학과 사유가 직조한 리듬이 생성된다.
그리려 하지 않는데 그려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