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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 정홍근
▲ 가을비 ⓒ 정홍근
단풍잎의 눈물을 보았네
그도 나처럼 하지 못한 말이 있는지,
쌉싸름한 빗방울에 섞여
뚝뚝 떨어지는 그리움을 보았네
예전에는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비에 젖은 옷의 축축한 느낌이 싫었고, 특히 가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기분을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것 같아 싫어했다. 그런데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어딘가 스산한 느낌을 주는 빗소리가 이제는 정겹다.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도 한다. 비 그친 다음날 푸르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나이가 주는 여유가 아닌가 싶고.
사시사철 비가 내리는데 왜 가을비는 유난히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걸까. 우리가 사랑하는 감정이 기쁨, 사랑, 환희 같은 빛나는 감정만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때론 쓸쓸함이 미치게 좋아 스스로를 그 감정 속에 빠뜨리는 유희를 즐기는 것이 인간의 이중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정홍근 시인의 '가을비'는 단풍잎의 눈물이고, 빗방울이 쌉싸름하다고 한다. 빗방울에 섞여 뚝뚝 떨어지는 것은 그리움이라 하는데 왜 이리 공감이 되는지. 가을이라서, 가을비라서 그 모든 감정이 쌉싸름한 빗방울로 용해되는지 모르겠다.
그리움은 또 어떤가. 평생을 녹여 먹고 우려먹어도 가슴에 남아 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사랑보다도 더 달콤쌉싸래한 감정이 그리움이 아닐까. 사랑은 잠시 머물다 떠나도 그리움은 평생 가슴에 남아 계절이 바뀌는 길목마다 딱따구리가 나무 파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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