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장유가> 제1권의 첫 페이지 필사를 끝냈다.
박진희
지난 4월부터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조한필)에서는 공주시와 함께 2021년 세계유산문화 활용프로그램(조선통신사, 공주에 납시었네)의 일환으로 '집콕, 일동장유가 필사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모집 선착순 200명에 들어 <일동장유가>의 필사집을 받아들었을 때의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763년(영조 39년)에 조선통신사 수행으로 뽑혀 일본에 다녀온 퇴석 김인겸이 쓴 총 4권의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는 한글로 기록된 데다, 필사집의 필사면을 채우는 비교적 손쉬운 비대면 프로그램이어서 며칠 내에 끝낼 것을 자신했다. 오죽 의욕이 넘쳤으면 연필로 한 번 쓰고, 그 위에 볼펜으로 덧쓸 각오를 다졌겠는가.
그러나 제1권의 몇 장을 채 넘기지도 못하고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막상 퇴석 선생이 쓴 바른 글씨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글자 한 글자 공을 들이다 보니, 평소 습관처럼 마구 휘갈겨 쓸 때와 천양지차라 너무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 궁금한 단어와 모르는 인물을 살펴 가며 써 내려가다 보니, 소요 시간은 예상보다 3~4 갑절은 걸렸다. 마음먹은 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슬그머니 흥미가 사라질밖에. 얼마 못 가 필사집은 이 핑계 저 핑계 끝에 책장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게 됐다.
기록, 글자에 뜻을 입힌 것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 <일동장유가>의 필사집이 잊혀져 갈 즈음이다. 필사집을 받은 지 한참 만에 프로그램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됐다.
"아무래도 10월 말까지 4권은 못 끝낼 것 같아요..."
"가족들과 나눠서 하시는 방법도 있어요. 본래 사업 취지에 부합하기도 하고요."
위안이 되는 통화를 마치고 나서 마음을 다잡았다. 고이 모셔둔 <일동장유가>의 필사집을 다시 꺼냈다. 어쩌면 프로그램 담당자의 조언대로 최후의 전술을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남은 한 달간 혼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 볼 생각이다. 천만다행으로 소싯적처럼 글씨체를 가지고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 찜해놓고 보는 드라마나 구독하고 싶은 유튜브 채널도 없다.
설령 일정대로 4권의 필사를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마무리는 지을 생각이다. 퇴석 선생이 <일동장유가>를 통해 후세에 전하고자 한 대의의 편린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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