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시장 (CHO CHIEU)Oil on canvas, 1998, HoChiMinh City Fine Art Museum
NGUYEN HOAI THUONG
베트남 시장 풍경을 담은 그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2012년 6월부터 만 4년을 하노이에서 살았다. 도착 다음날 맞은 하노이의 첫 아침을 아직도 기억한다. 뿌옇게 동이 틀 무렵, 세상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상점문이 드르륵 열리고 오토바이가 부릉 지나가며 강아지가 왈왈 짖는 와중에 인근의 군대 초소에서 빰빠밤 기상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니 아파트단지 옆 공터에 상인들이 분주하게 물건을 늘어놓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지켜보며 내가 지금 낯선 곳에 와있구나 절감했다. '나는 여기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날씨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말도 다른 이곳에서?' 걱정과 불안이 뒤섞였다.
아침 7시인데 해가 벌써 중천에 떠올랐다. 구경삼아 시장이나 둘러볼 겸 밖으로 나갔다. 시장 초입에 바나나 두 송이를 바닥에 놓고 쪼그려 앉은 여자아이가 나를 보자 손으로 바나나를 가리켰다. 고무바구니에 새우를 잔뜩 담아 파는 여자, 짚더미위에 계란을 모아 파는 여자, 망고와 파파야를 파는 여자, 파인애플 더미 옆에서 껍질을 깎는 여자, 수박과 멜론을 파는 여자, 닭과 오리를 비좁은 우리에 가두고 그 자리에서 한 마리씩 잡아 털을 뽑고 피를 빼는 남자, 넙적하고 투박한 탁자위에 소고기와 돼지고기 덩어리를 늘어놓고 파는 남자, 광주리에 쌀을 담아 파는 남자, 펄떡이는 생선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식칼로 내려치는 여자를 차례로 지나쳤다.
그리고 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꽃 파는 여자와 마주쳤다. 여자는 붉은 장미 한 다발을 얼른 내 앞에 내밀고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곤 자기 지갑에서 2만 동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줬다. 그렇게 붉은 장미 한 다발을 2만 동에 샀다. 2만 동은 우리 돈으로 1000원쯤 된다. 베트남에서의 첫 구매였다. 장날을 생생하게 묘사한 글이 하나 떠올라 덧붙인다.
"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 대구를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대구나 혹 문어를 가지고 오는자, 담배풀을 끼고 오는 자, 땔나무와 섶을 메고 오는 자, 누룩을 짊어지거나 혹이고 오는 자, 쌀 주머니를 메고 오는 자..." - '시기' 기미년(1799년) 10월, 이옥
"책상에 엇비슷이 기대고 누웠다. 세모이기 때문에 시장이 더욱 활기에 넘친다." -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창비, 설흔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