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동구 고양꽃전시관에 임시설치된 얀센백신거점접종센터에서 만 30세 내외국인이 접종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이희훈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일할 수 없다고 사장이 통보했을 때 마르따(가명)는 난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백신 부작용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맞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차였다. 그 일로 마르따는 오랜만에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다. 쉼터 사람들과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이십여 년인 그는 지금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밝은 표정으로 쉼터에 들어선 마르따는 백신접종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하라는 어른들 잔소리가 듣기 싫어 서른 즈음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었고, 영어강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관광취업비자로 한국에 왔던 그의 용기를 떠올려 보면 의외였다. 어찌 됐든 마르따는 한 번만 맞으면 접종완료가 되는 얀센을 맞았다.
함께 예방접종센터에 갔다 오며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하자, 마르따는 저녁에라도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일터로 빨리 돌아가려는 눈치를 모른 척하고 입에 맞는지 모르는 들깨칼국수를 사주며 천천히 가도 된다고 타일렀다.
"예방접종 후 비정상반응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조건 쉬는 거라고요. 사장님께는 백신 맞으러 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렸는데 보건소에서 백신 맞고 안정 취하라고 해서 일 못한다고 해요."
한국인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마르따가 처음 한국에 왔던 때는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해였다. 농구 말고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그에게 대한민국은 녹록지 않았다.
사우디에서 귀국 후 어학원 강사를 하던 마르따에게 한국으로 갈 것을 권했던 사람은 영어학원 취업을 약속했다. 어학원에서 만났던 한국 학생들도 그의 한국행을 적극 찬성했다. 그러나 정작 마르따가 한국에 오자 초청인은 주한미군 가사도우미를 권했다.
필리핀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강사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우디에서 비슷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지만, 마르따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한 달 뒤 귀국을 결심했을 때 학원 강사 자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취업비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체류 자격은 있지만 취업 자격은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작한 일을 이십 년 가까이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동안 조카가 한국인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이혼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그의 체류자격도 몇 번 바뀌었다.
처음 일했던 학원에서 일 년쯤 지났을 때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창업하며 같이 일하자고 했고 작년 초 코로나로 문을 닫기 전까지 그곳에서만 학생들을 가르쳤다. 매해 선생님들이 바뀌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는 터줏대감이었다. 같은 나이 또래인 학원장은 마르따를 친구처럼 대했고 이름으로 불렀다.
학생들은 대체로 수줍음이 많긴 했지만 예의 바르고 착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마르따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불렀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칭에 의문이 생겼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로 온 대학생이나 새로 온 선생님이나 한국 사람은 다 선생님으로 부르는데 자신만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이상하다고 원장 선생님께 말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영어권에서는 여자 선생님에게 맘(ma'am)이라고 부르는 걸 알지 않느냐며 호칭 변경을 요청했었다.
원장 선생님은 먼저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무례한지를 물었다. 마르따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원장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외국인에게 좀 더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그런 거니까 이해해요"라고 했다.
마르따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학원에서 호칭에 차별을 두는 건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말했지만 원장은 학원 원칙상 그렇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을 우연하게 길거리나 마트에서 만날 때마다 학생들은 아는 척하며 마르따 이름을 불렀다. 덕택에 마르따는 동네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외국인이긴 해도 학부모들로부터도 선생님으로 불린 적은 한 번도 없다. 학부모들 중에는 마르따보다 나이 어린 사람도 많았지만 아이들처럼 이름으로 불렀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렵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