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과 씨가 맺힌 모습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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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 씨앗 터뜨리기 ⓒ 김정아
어릴 적, 봉숭아 꽃이 필 무렵이면 언제나 어머니가 손톱에 물을 들여주셨다. 집에서는 매년 사용하는 천이 있었다. 사용 후에 빨아서 가지런히 개서 서랍에 넣어두셨는데, 꽃물로 범벅이 되어 얼룩덜룩한 모양이 오히려 기대감을 상승시켜주었다.
물을 들일 때면, 어머니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셨고, 우리 삼 남매는 귀를 쫑긋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이모가 백반 대신 뭔가를 잘 못 넣어서 밤에 손이 너무 아파서 자다 말고 깨어나서 개울가에 손가락을 담갔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난 적도 없는 소녀 어머니를 눈앞에 선명하게 그리곤 했었다.
그렇게 손가락에 비닐과 헝겊을 덮고 실로 총총 감아서 잠자리에 누우면 행여 자다가 빠질세라 노심초사하느라 몇 번씩 잠에서 깨곤 했다. 너무 단단히 묶어 피가 잘 안 통해서 힘들어하면서도 막상 느슨하게 풀어주신다고 하면 싫다고 도망을 갔다.
그리고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어김없이 손톱에 물든 것을 확인하고 신나 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이 봉숭아 물이 첫눈 올 때까지 빠지지 않고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 왠지 설레기도 했었다.
그 기억이 나서 작년에 봉숭아 물들이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백반을 구하지 못해서 소금을 조금 넣었는데, 아마 너무 조금 넣었나 보다. 남편에게까지 우리의 풍습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했는데 물이 안 들어서 너무 실망을 했다.
그러나 올해 다시 도전! 여러 쇼핑몰들을 뒤져서 백반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 늙은 나이에 애처럼 무슨 봉숭아 물들이기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이 나이에는 그런 핀잔을 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기죽을 나이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