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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평가 내실화 위해 노동자 참여를 보장해야

[위험성평가, 노동자 손으로! ①] 위험성평가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등록 2021.09.13 11:26수정 2021.09.1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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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성평가는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여 해당 요인을 감소하기 위해 진행하는 절차다. 노동 현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노동자의 참여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는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여 해당 요인을 감소하기 위해 진행하는 절차다. 노동 현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노동자의 참여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pixabay

위험성 평가는 일터에 있는 모든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여 발생 가능성과 중대성을 추정하여 평가하고, 감소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위험성 평가는 사전예방 조치로써 매년 모든 사업장에서 실시해야 하고 법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위험성 평가를 포괄하는 현대적 의미의 안전보건 관리체계는 로벤스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태동한다. 1970년대 초반 영국 정부 의뢰로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했던 로벤스 위원회는, 위험은 이를 생산하는 조직이 가장 잘 알기에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근거해 안전 조직 시스템 개선, 경영진의 주도적 책임성 강화, 노동자 참여 강화를 안전보건 관리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더불어 국가는 기업이 준수해야 할 지침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업의 자율 규제를 위한 여건 조성을 맡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로벤스 보고서 이후 국가에 의한 지시적 위험 관리로부터 조직 스스로 위험을 통제하는 자율 규제적 관리로 안전보건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이같은 패러다임 전환에 바탕에 둔 위험성평가는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에서 법으로 제도화되었다. (민주노동연구원(2021), '위험성 평가 실태 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은 2013년, 로벤스 위원회가 주목한 위험을 생산하는 기업과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 강화를 통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확립이라는 패러다임과 원칙은 배제하고, 국가의 일방적 규제가 아닌 '노사 자율 관리' 차원으로 위험성 평가를 제도화했다. 제도 도입 당시부터 유럽 국가들과 달리 노사의 힘 관계가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위험성평가가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의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분명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다. 금속노조는 위험성 평가의 목적과 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제도 도입 초기부터 현재까지 전 조직적 차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측 주도로 진행되었던 위험성 평가 내용 검토를 시작으로 노조 차원의 현장 참여 방안을 내고 평가 도구와 기준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현장에 강제하도록 하고 간부 및 조합원 대상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위험성평가 기본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장 투쟁을 바탕으로 2018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진행되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과정에서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를 법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성과를 남겼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2020. 5. 26.] [법률 제17326호, 2020. 5. 26., 타법개정] 제36조(위험성평가의 실시) ① 사업주는 건설물, 기계ㆍ기구ㆍ설비, 원재료, 가 스, 증기, 분진, 근로자의 작업행동 또는 그 밖의 업 무로 인한 유해ㆍ위험 요인을 찾아내어 부상 및 질 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의 크기가 허용 가능 한 범위인지를 평가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하며, 근로자에 대한 위험 또는 건강장해를 방지하기 위하 여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평가 시 고용노동부장관 이 정하여 고시하는 바에 따라 해당 작업장의 근로 자를 참여시켜야 한다.

위험성 평가 관련 현장 실태 연구 결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위험성 평가와 관련해 현장 실태 조사를 하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에는 민주노총 산하 5개의 산별연맹(공공·금속·보건·서비스·화섬)이 참여하였다. 연구는 사업장 대상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 연구 개요
- 참여 대상 : 민주노총 산하 5개 산별연맹(공공·금 속·보건·서비스·화섬)
- 참여 사업장 : 공공(24), 금속(67), 보건(27), 서비 스(32), 화섬(41)
- 심층 면접 대상: 금속노조 다스지회, 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 :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도조합, 서울교통공사 노 동조합 : 화학섬유연맹 엘지화학 대산 노동조합 : 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 지부

지금까지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6%만이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29.8%는 '한 번도 안 했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48.1%가 위험성 평가 제도를 몰라서라고 응답했고, 24.1%가 노사 모두 위험성평가를 꼭 시행해야 하는지 몰라서라고 답했다. 노사 모두 위험성평가 필요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위험성평가 사전준비 단계(안전보건 정보수집, 교육, 일정/방법 수립 등 사전준비)부터 사업 결과 공유(조합원 설명회)까지 단계별로 노동조합 참여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적으로 절반 정도가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측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답했다.

가장 높게 현장 조합원과 노동조합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응답한 단계는 위험성 추정/결정이었다. 반대로 가장 낮은 응답을 보인 영역은 위험성평가의 결과 공유였다. 위험성 평가 이후 개선 과정에서 작업자 의견이 배제되거나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조건으로 확인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고 난 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그 결과 대체로 5개 산별연맹에서 2019년 이전보다 높은 참여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자 참여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노조들은 합의 후 현장 작업자를 참여시켜 노사 공동으로 개선을 시행하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이와 같은 답변은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한 4개 산별연맹에서 이전 연도보다 5~10%이상 비율이 높아졌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위험성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노조 참여 없이 사측이 진행했다(26.3%), 사측이 결정한 외부기관에서 전체 진행을 알아서 했다(21.1%)는 답변이 있었다. 전체 비율을 합치면 47%로 노동조합의 참여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현장 간부와 조합원 대상으로 위험성평가에 대해 교육하고 단위사업장까지 활동 지침을 내리는 금속노조의 경우 노사 자체적으로 진행했다는 비율이 46%로 다른 산별과 큰 차이를 나타냈다. 노동조합이 긴 시간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대응했을 때 현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응답이었다.

위험성 평가는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휴식시간과 휴게시설 등 근로조건, 화학물질, 사고, 근골격계질환, 직장 내 괴롭힘, 직무스트레스, 감정노동, 성희롱 등 성평등, 모성보호까지 현장의 모든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고, 근골, 화학물질 중심으로 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 정신건강 문제 등 사업장 특성에 맞게 평가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후 노동조합 차원의 내용 마련과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위험성 평가 후 마련된 위험 개선 대책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에 가까운 응답이 나타났다. 위험 개선 대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64%의 응답자는 '사측의 의지부족'을 꼽았다. 위험성 평가 후 마련된 위험 개선 대책이 잘 이행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절반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답하고 또 다른 절반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사업주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성평가 관련 법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에 90%가 그렇다고 답한 부분은 사업주의 책임성을 명확하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위험성 평가가 재해예방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0%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조합원들이 안전보건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것 같은지 묻는 질문에도 77%가 그렇다고 답했다. 법적으로 작업자 참여가 보장된 위험성평가 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할 경우 사전 예방 안전 조치로써 위험성 평가가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답변이었다.

위험성 평가 활성화 방안

위험성 평가의 내실화를 위해 위험성 평가를 이행하지 않거나 위험성평가 후 위험 감소대책을 이행하지 않았을 시, 사업주 징벌과 같은 법적인 제재 조치를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업주와 노동조합 모두 목적의식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위험성평가의 핵심 조항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 참여 조항을 보다 구체화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 법 조항과 노동부 고시는 사측이 위험성 평가를 진행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으로만 참여를 보장한다. 참여 주체, 참여 방식과 권한 등을 명시하고 참여권리 보장을 강화해야 노동자의 형식적 참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현장에서도 예방적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차원으로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한 위험성 평가에 대한 평가를 시작으로 현장에 맞는 평가 내용과 기준을 마련하고 조합원 참여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 중 2호 유해·위험요인 확인점검 및 개선절차 마련과 이행상황 점검 관련 부분을 위험성 평가 실시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지금의 위험성 평가제도는 노동자 참여가 법제화 되어 있으나 서류상의 형식적 운영이 만연해있어 보완 규정 없이 이 제도로 갈음할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죄부로 전락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위험성 평가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만큼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위원이자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인 재현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위험성평가 #위험성평가_노동자참여 #민주노총_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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