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는 어딜가나 늘 함께하는 우리의 가족이다. 캐나다 빅토리아를 여행할 때 함께 묵은 숙소의 푹신한 이불을 즐기는 은이의 모습
송주연
은이의 사연
은이를 알게 된 것은 대구의 한 민간 유기견 보호소를 통해서였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5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생명을 존중하는 자원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했다.
처음 봉사를 갔던 날, 개들이 한꺼번에 꼬리를 치며 달려와서 조금은 놀랐었다. 하지만, 개들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고 저마다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이도 금세 개들과 어울렸다. 우리 가족은 소형견 축사를 청소하고, 개들을 산책시키는 일을 했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보호소의 매니저가 슬쩍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강아지들 한 마리 거두어 주시는 게 더 큰 봉사예요."
우린 흘려들은 척하며 집으로 왔지만, 계속해서 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가 개와 놀던 모습도 아른거렸다. 하지만, 개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불편한 일은 생기지 않을지 온갖 고민들이 밀려왔다.
한 달 후 마침내 결심이 섰고, 보호소에 연락을 해 입양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임보 중이던 은이를 소개받았다. 보호소 매니저는 입양 전 몇 차례 임보 가정을 방문해서 만나보길 권했고, 아직 어린 아이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우리는 임보 가정을 방문했고, 임보자님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은이는 산에서 6개월 정도를 떠돌다 구조되었는데 당시 은이는 귓속에 벌레가 가득하고 피부병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난히 사람을 따랐다.
임보자님이 보호소를 방문했던 날 은이는 이 분의 품에 안겨 떠나질 않았고 도저히 데리고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은이는 가정에서 지내며 귓병과 피부병을 치료했고, 건강해졌다.
그 후 은이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입양을 갔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몇 달 되지 않아 중풍에 걸렸고 은이는 파양돼 임보가정에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우리와 만난 건 은이가 파양의 상처에서 회복돼 다시 밝게 지내고 있을 때였다.
은이의 임보자는 은이의 사연을 들려주었고, 은이의 성격이나 특징은 물론 초보 반려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A4 두 장 분량에 빽빽하게 적어주셨다. 우리 가족은 이분께 많은 걸 묻고 배우며 점차 능숙한 반려인이 되어갔다.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가끔 급한 일이 생겼을 땐 선뜻 은이를 맡아 돌봐주시기도 한다. 가까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임보는 유기견들이 가정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입양 확률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유기견들과 함께 해주는 임보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은이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가족이 된 은이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줬다. 먼저 생명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가르쳐줬다. 입양을 결정했을 때 나와 남편은 줄곧 "외동인 아이에게 좋을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은이를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은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안다.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은이에게서 배웠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서로의 기대와 바람, 욕구를 투사하고 이것이 충족되길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하지만, 은이는 다르다.
은이는 우리를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한다.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지도 않고,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같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현해준다.
나 역시 '조건 없이' 은이를 사랑한다. 가끔씩 신발을 물어뜯거나 이불에 실수를 해도 화가 나기는커녕 마냥 예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의 아이가 말썽을 피웠더라면 대번 목소리 톤이 높아졌을 텐데 은이는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다.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솔직한 내 모습을 마주하게 해준다.
은이 앞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 완벽하게 비밀보장을 해주는 은이에게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정말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은이 덕분에 '무조건적인 사랑'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