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원 대표가 쓴 두 권의 책
파람북, 사무사책방
- 블로그(brunch.co.kr/@swkyung0221)를 보니 '로컬 크리에이터'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데 소개해 달라.
"지난해에 중소기업벤처부와 창업진흥원 의뢰를 받아 <로컬 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현황 분석 및 전략 수립> 연구를 했다. 툭 터놓고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이들 가운데 정말 기업가정신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존 소상공인들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지원을 하지만 지원이 끊기고 나면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원금이 얼마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이 3년을 넘기지 않다 보니까 창업은 쉽게 하는데 오래 가지 못한다. 창업 이후에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지를 잘 살피면서 로컬 생태계와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 로컬 생태계를 만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경제를 되살리려면 경제활동인구를 다시 불러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로컬 숍이나 카페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소비 공간 구축을 넘어서 생산 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생산이 늘면 자연스럽게 소비도 늘어나니까. 도시가 자생력을 가지려면 생산 활동이 필요하다. 나는 거기에 관심이 있다. 무엇보다 창업자들 주변으로 산업이 일어나도록 해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재생도 로컬 창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말 지역을 바꾸고 싶으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인구 유출을 막으려고 애를 쓰는데 인구가 이동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유입을 늘리는 데 더 힘을 쓰는 게 낫다. 새로 유입되는 인구와 기존 인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고민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인구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늘어난 인구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 정부가 내년에 로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보나.
"행안부, 국토부, 중기부에 과기부까지 부처들이 협력하지 않는 게 문제다. 그러다 보니 예산낭비도 심하다. 엄브렐라(우산) 조직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는 예산을 합쳐 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월드뱅크의 도시 경쟁력 순위를 보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도시들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큰 도시가 경쟁력이 높을 거라고 보지만 급성장하는 도시는 아주 작은 도시들이다. 그런 도시들을 보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가령, 터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카펫을 잘 팔 수 있게 정부와 지자체가 작은 공항을 만들어줬다. 지역 산업을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해준 거다. 그만큼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
-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로컬 의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내가 MIT에 있을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게 도시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거였다. 도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리더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상당히 인텐시브(집중적인)한 코스였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도시 계획가로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결국 정치 리더가 되어 도시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디트로이트가 가장 극명한 예다. 시장이 잘못된 판단을 해서 도시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뉴욕이 성장한 건 좋은 리더를 만난 덕이다. 도시 계획 프로그램에는 리더십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도시가 바뀌려면 로컬 크리에이터만으로는 어렵다. 리더의 역할이 크다. 그들에게 비전을 주고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아니라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무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그게 로컬 중소도시를 살리는 열쇠다."
- 우리나라 정치 리더들도 많이 만나봤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
"영국에 있을 때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 지금도 관료들이나 지자체장들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외국 사례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먼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공부하라고 답한다. 자기 도시의 문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도시의 문제를 깊이 파악해야 다른 도시가 가진 특성과 문제도 보인다. 한 도시만을 벤치마킹하려는 건 의미가 없다."
-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때가 되면 'OOOO 5개년 계획' 같은 것들을 발표하지 않나.
"향후 10년의 계획은 있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연한 계획이어야 한다. 영국에 있을 때 10년 계획을 아주 유연하게 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 큰 방향을 정하고 해마다 평가를 해나가면서 계획을 조금씩 바꾼다. 이렇게 유연한 구조로 가야 한다. 도시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변하는데 옛날처럼 한 번 세운 계획을 수십 년 동안 쥐고 가면 안 된다. 사회 경제적인 상황에 맞춰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청년들을 지원해 보자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도시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큰 틀에서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산업과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큰 그림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 도시 연구자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나치게 개발 위주로 도시 문제를 다루다 보니 지역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도시 문제는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것도, 또 도시를 살리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 밀레니얼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신원 (지은이),
파람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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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 이 두 도시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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