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면 모든 게 귀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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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지나가는 하루 같은 건 없었다
"역류성 식도염입니다."
속이 쓰려 잡히지도 않는 위를 부여잡고 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그즈음 난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제발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 같은 건 없었다. 어떤 날은 중요한 일에서 실수해서 팀에게 피해를 줬고, 어떤 날은 전화 응대를 하며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못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다. 또 어떤 날은 사소한 오해로 동료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다.
퇴근을 하면 모든 게 귀찮아졌다. 그 핑계로 평일엔 편의점에서 즉석식품들을 주로 먹었다. 주말에는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각종 배달 음식을 시켜 과식을 했다. 떡볶이, 피자, 치킨 등 매번 욕심껏 음식들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소화제가 없으면 불안해졌다. 식사를 하고 나면 매번 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소화가 안 되다 못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병원에 갔다. 단순한 소화불량인 줄 알고 소화제만 먹었다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환자분, 역류성 식도염 쉽게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식습관 개선 안 하시면 암이 될 수도 있는 병이에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픈 건 위장뿐만이 아니었다. 움츠러든 어깨, 나도 모르게 숙여진 고개, 웃음을 잃은 얼굴. 모든 게 건강하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하루의 모든 순간을 헤아리며 후회하곤 했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때 좀 더 여유 있게 행동할 걸', '그때 그냥 죄송하다고 할 걸'.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번 품을 들여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셨다.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부엌에 가면 늘 엄마가 계셨다. 방금 무쳤다며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나는 나물을 내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덕분에 매일 갓 지은 밥과 따끈한 국을 먹고 학교에 갔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뼈가 튼튼해지고, 살이 붙었다.
엄마가 정성스레 키워놓은 나를, 나는 너무나 쉽게 병들게 했다. 건강하지 못한 지금의 나를 보고 엄마가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음식이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을 검색했다. 다들 입을 모아 양배추를 찬양했다. 마트에 들러 양배추 반 통을 사고, 레시피를 검색했다. 내가 선택한 건 '양배추 덮밥'. 집에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굴소스가 있길래 선택한 레시피였다.
양배추가 뭐 얼마나 맛있겠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