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된 지난 8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심상권 일대 폐업한 일부 가게들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희훈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재취업을 선택하지 않고 자영업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까? 일각에서는 자영업을 향한 이들의 불나방과 같은 돌진을 '게으름', '섣부름', '체면' 등의 단어로 속단하지만, 개인 경험으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불현듯 다가오는 명퇴는 그 개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오십 대에 명퇴를 당하면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연령대의 최대 화두는 대출(주택)과 교육비(대학)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가장 지출이 많을 연령대라는 것이다. 혹자는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거론하지만, 이 연령대의 명퇴자들이 가정에서 받는 무언의 압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마리아나 해구'(바다 중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서 받는 수압에 비견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어찌 해야겠는가? 회사라는 사회에서 나름 치열하게 생존한 그들은 게으르고 섣불러서가 아니고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러니 가장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것(대표적으로 외식 프랜차이즈)을 선택하게 된다.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종)을 –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이 요구되는 – 선택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더해 '체면'이란 요소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흔히 '공장이라도 가'라는 말이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이유를 모른다면 그건 정말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본다.
현대 사회에선 수십 년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면, 그게 누구든지 '산송장'이 된다. 그가 쌓았던 모든 경력은 순식간에 게임처럼 가장 낮은 최초 레벨로 돌아가고 그동안 자신의 직급에서 받았던 존중과 존경은 아침 이슬처럼 부질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낯선 업종에서 낯선 업무를 사회 초년생 취급받아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날 이후
그렇게 내게 '명퇴 고민'을 상담했던 사람들은 이후 어찌 되었을까? 내 만류로 회사의 위로금까지 포기하며 5년을 더 버텼던 A는 회사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결국, 명퇴를 선택했고 내게 또 창업을 상담했지만... 다행히도 다니던 회사와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직으로 다시 일할 수 있었다(물론 급여는 삭감되었다).
가게 창업을 선택했던 회사 선배 B는 그 뒤 나는 물론 다른 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후일담을 알 수 없다(무소식이 희소식이길 바랄 뿐이다). 후배 C는 인맥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이전의 기술직은 포기해야 했고 기술영업직으로 근무 중이다. 이렇게 A와 C는 이전의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문제는 이제 한 고비를 넘겼을 뿐, 실직과 퇴직의 위험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 글을 쓰는 나는 어찌 되었을까? 10년 동안 한 번의 전업을 거쳐 이어가던 자영업을 여러 사정으로 5년 전 그만두었다. 그 후 다시는 자영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 후, 세 번의 재취업 도전 끝에 현재 작은 협동조합의 상근직으로 근무 중이지만 '코로나19'라는 된서리에 투잡까지 하며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회차 글에서는 재취업을 위해 십수 년 만에, 베테랑에서 인턴 엔지니어로 현장으로 돌아갔던 경험과 요즘 젊은이들의 선망 대상이라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쉽지 않은 '중년 재취업'의 환경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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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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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자영업이 게으름 탓? 그들의 목 조르는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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