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시그네틱스 파주 공장 앞에서 집회 중에 율동을 하고 있는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남옥연씨는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파주공장 출근 약속만 지키라고 했던 것이었다며 파주공장으로 가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풍의 인수 소식을 듣고 영풍이 무노조경영과 석포제련소 환경파괴 기업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파주공장 준공식을 할 때, 회사는 전 직원에게 '축 파주공장 준공'이 적혀있는 수건을 돌렸다. 옥연씨는 그 수건을 아직도 갖고 있다.
염창동 공장을 매각한 영풍은 노동자들의 예상대로 파주공장 생산라인을 비정규직 노동자 천 명으로 채웠다. 처음에는 시그네틱스 지분 99.7%를 소유한 자회사 STI 소속으로 고용하다가 2004년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되자 공정별로 소사장제를 도입해 30~60명의 인원이 소속된 2차 하청업체 10여 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파주공장에서 생산량을 올리기 위해 안전설비가 되어있는 기계를 뜯어고쳐 현장 실습을 나온 19세 고등학생의 손목이 프레스에 눌려 절단당하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하루라도 더 싸워보자
지난 7월 14일 저녁 7시, 시그네틱스 해고노동자들이 광화문 주변으로 흩어진다. 가능하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펼친다. 오래 하다 보니 각자의 고정 위치가 있다. '내가 세운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 가자 파주로!' '20년간 4번째 해고한 영풍회장 즉각 구속하라!' 최근에 새로 만든 형광색 조끼 덕분에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광화문 네거리 신호등 옆에서 1차 해고자 임은옥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임은옥씨는 덥고 몸이 힘들어서 나올까 말까 고민했다고 한다. 수도권 인근 전철역에서 한 시간 반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곳에 살다보니 이곳에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오는 게 마음이 편하겠더라고. 이럴 때 왠지 더 와줘야 될 거 같은 느낌? 이번에 신랑한테 그랬어요. 우리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몰라. 싸울 수 있는 주체가 많이 줄어들은 상황이고, 이번에 우리가 잘 해서 이기면 영풍도 혹시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기대감도 있어요. 우리도 나이를 먹다보니까 이렇게 같이 싸울 수 있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도 있고 절실함도 있고.
그랬더니 신랑이 그래요. '당신이 가면 돼? 4차는 몰라도. 솔직히 말해봐. 가능성 없잖아.' 4차에 비해선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힘으로 회사랑 싸워서 노동조합 인정받고 복직하는 건 4차나 1차나 똑같은 거지. 더 나이 먹고 기운 없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더 싸워보자 그 생각도 있어요."
은옥씨는 나중에 복직해서 '나 너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 할 때 스스로 사표를 낼 순 있어도 이렇게 해고된 상태로 투쟁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했다. 싸우다 정년을 맞는 것과 스스로 포기하고 정년을 맞는 것은 다르다. 은옥씨는 2001년 시그네틱스에서 해고를 당해 20년 동안 복직투쟁을 해온 이른바 '1차 해고자'다. 은옥씨 등 노동조합 간부와 사측이 말하는 '강성 조합원' 29명은 2007년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지 못한 이후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