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암동 현진건 집터 앞의 표석. 현진건이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라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정만진
소설 속의 "(결혼한 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었지마는 한 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 따름이었다"는 내용은 현진건의 실제 삶과 거리가 까마득하다.
현진건의 집은 아버지가 정3품 대구전보사장을 역임한 덕분에 홍건, 석건, 정건, 진건 네 아들이 모두 러시아, 중국, 일본에 유학했을 정도였고, 현진건의 장인 이길우(李吉雨)는 만석꾼이라던 형 이장우(李長雨)와 더불어 대구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다.
소설은 "처가 덕으로 집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라고 했지만, 현진건은 "처가 덕"으로 집을 장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국에서 돌아온 6월 19일 이후 불과 세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양부(養父, 궁내부 시종과 주일공사관 참서관을 역임한 당숙 보운)가 남겨준 서울 종로구 관훈동 52번지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물론 현진건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내가 저고리를 전당포에 맡겨야 일상 경제가 지탱되는 빈곤 상태는 더욱 아니었다. 소설은 현진건의 실제 삶과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판이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1915년 결혼 이래 거주했던 처가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있었으므로 현진건이 장인의 생일을 맞아 "(소설의 부부가 사는, 서울) 천변 배다리 곁"에서 "거리가 꽤 멀"리 떨어진 "(서울) 안국동" 처가까지 "한참"을 걸어갈 일도 없었다.
〈빈처〉는 가난에 시달리는 아내를 등장시키고 있으나 현진건의 실생활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빙허가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에도 대구의 처가에서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은 물론 심지어는 가정부까지 주선해 주었다.
거기다 양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적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궁색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빙허의 관훈동 집에는 <백조> 동인들인 나도향, 박종화, 안석영, 박영희를 비롯 고향 친구 이장희, 이상화, 백기만 등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사소한 유사점이 있다고 소설을 자서전처럼 여겨서야
〈빈처〉의 주인공 '나'와 작가 현진건의 실제 삶 사이에 발견되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보자. 두 사람 모두 작가 지망생이라는 점, 아내가 남편보다 연상이라는 점, 남편은 외국 유학을 한 신식 지식인이고 아내는 구식 여성이라는 점이 소설과 실제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는 현진건 특유의 경험이 아니라 당대에 너무나 흔한 사회현상이었으므로 〈빈처〉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 '사회 소설'로 인정되는 데에 오히려 유용한 근거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통점은 소설 속 주인공이 "내가 외국으로 돌아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띄어 까닭 없이 구식 여자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장가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라고 자술하는 부분이다.
현진건이 수필 〈결혼제도 없는 사회〉에서 "가정이란 인생고의 실험실인 줄 생각합니다. 제도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이 고苦만은 의연히 고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다면 가정‧결혼‧이혼 제도가 없는 사회이겠지요"라고 말한 내용을 본인의 "후회"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이 점만 가지고 소설 자체를 자전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나'가 구식 여성 아내와 이혼한 후 신여성과 재혼하지 않듯이 현진건도 이혼과 재혼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여 〈빈처〉를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론은, 소설의 '나'와 작가 현진건은 전혀 다른 삶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빈처〉는 결코 자전적 소설이 아니다.
소설의 '나'는 빈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현진건 본인은 부유한 가정 출생에 외국 유학 후 유력 신문사 현직 기자로서 처가도 부호였을 뿐만 아니라 강력히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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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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