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로고.
국회사진취재단
이날 PD수첩 방송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이 일본 극우세력과 결탁한 정황이 고스란히 나온다. 국정원이 일본 공안에게 정보를 주면 일본 공안이 다시 극우세력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식이다.
최재익 독도수호연대 대표의장과 윤미향 당시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일본 극우세력 수십여 명이 미리 대기했다. 일본 극우세력의 폭언과 망동은 예삿일이었다. 최재익 대표의장은 "실질적인 살해위협까지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일본 극우세력의 차량이 갑자기 튀어나왔고, 최재익 대표가 타고 있던 차량의 창문을 일장기로 뒤덮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전 해외공작관은 윤미향 의원을 향해 "그 X 빤쓰까지 다 뒤지라고 해"라고 한 상관의 통화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지난 8월 19일, 윤미향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본 공항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리며 "(일본 공항 측에서) 가방을 여기저기 뒤지며 속옷도 뒤지고 꾹꾹 눌러보기도 해 치욕스러웠다"라고 전했다. 전 해외공작관은 "일본에선 알려주지 않는데 국정원은 너무 쉽게 한국이 보호해야 할 국민 정보를 넘겨준다"라며 국정원의 행위를 지적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최재익 대표의장과 윤미향 의원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숙소, 행사장 이동 동선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일본 극우세력이 어떻게 알고 미리 와 있었는지 늘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국정원이 일본 극우세력에게 먼저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PD수첩 제작진은 국정원에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라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일 극우세력 잇는 '아베 단짝' 사쿠라이 요시코
지난 7월 31일, 온라인에서 '제8회 일본연구상' 시상식이 열렸다. 일본의 극우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코가 이사장을 맡은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이하 국기련) 측에서 일제의 '위안부' 동원 범죄를 부정하는 이우연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에게 위안부의 진실을 알린 공로로 특별상과 상금을 전달했다.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는 PD수첩 제작진 앞에서 "사쿠라이 이사장께서 직접 수여하셨다"라며 반겼다. 그들은 현직 일본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가 국기련을 통해 자신들에게 축전을 전해온 점을 특히 기뻐했다. 방송에서는 일본 극우세력 칭찬에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하는 한국 극우세력의 낯 뜨거운 민낯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이처럼 일본 극우세력이 한국 극우세력의 '친일 활동'을 응원하고 특별상과 상금까지 건네는 건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PD수첩은 국기련에 관해 "길거리 극우들과는 격이 다른 정책 극우"라고 설명한다. 특히 국기련 이사장을 맡은 사쿠라이 요시코가 현재 일본의 정책에 상당한 힘을 미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국기련은 이러한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올해로 만 76살, 기자 출신인 사쿠라이 요시코 국기련 이사장은 한국에게도 극우 성향으로 잘 알려진 산케이신문에 칼럼을 쓰며 극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2007년 국기련을 설립해 일본 극우세력을 뒷받침하는 반북, 반중, 반공, 혐한 논리 개발을 본격화해왔다.
사쿠라이 요시코가 대표로 있는 연구기관 국기련(국가기본문제연구소). 매체 언론TV(겐론테레비)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전직 일본 총리 아베 신조, 현직 총리 스가 요시히데, 전직 방위상 오노데라 이쓰노리, 전직 경제산업상 아마리 아키라를 비롯해 자민당 고위 관계자들이 종종 얼굴을 비춘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헌법개정을 실현하는 1000만인 네트워크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에서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민의 모임 공동대표로는 미요시 도루(三好達) 일본회의 명예회장도 속해 있다. 일본회의는 아베가 소속된 일본의 초당파 극우 모임으로 평화헌법 개정과 반북, 혐한 정책을 강조해온 일본 극우세력의 거점이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이러한 일본회의와도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런 사쿠라이 요시코의 위상이 국정원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MBC 'PD수첩'이 다국정원과 일본 극우세력의 부당거래 의혹이 연합뉴스 일본어판 보도를 통해 전해지면서 일본 포털 검색창이 한동안 사쿠라이 요시코라는 이름으로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