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가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이 연설하는 것을 듣고 있다. 2019.10.29
연합뉴스
토론 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언어다. 의원들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상당히 세다. 의회가 공식적으로 낸 자료에 의하면 최근 몇 년 의원들의 발언 중 거짓말쟁이, 주정뱅이, 불한당(blackguard), 망나니, 멍청한 새끼(git), 부랑자(guttersnipe), 겁쟁이, 훌리건, 쥐새끼, 끄나풀, 배신자 등이 제재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보리스 존슨 총리는 앉아서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에게 우유부단하다는 뜻이 담긴 속어(great big girl's blouse)를 외쳤다가 다음 날 신문 1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했다.
하원 의장의 즉각적 언어 제재로 인해 의원들은 좀 더 고급화된 표현을 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하원 의장의 제재를 피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표현을 발명한 예로 윈스턴 처칠이 있다. 그는 거짓말을 "용어적 비정밀성(Terminological inexactitude)"이란 표현으로 고급화시킨 걸로 유명하다.
총리에게 질의하는 시간
매주 수요일 12시 하원은 꽉 찬다. 총리가 평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총리에게 질의하는 시간'(PMQ, Prime Minister's Questions, 이하 '질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질의 시간'은 수백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1880년대부터 독립된 스케줄로 지정되었다. 1953년 보수당 윈스턴 처칠 수상 때는 화, 목요일 15분씩 했다. 이후 1997년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는 좀 더 내실 있는 토론 시간을 갖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30분으로 바꿨다. 1990년부터 BBC가 질의 시간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질의 시간은 총리에게 오전 스케줄과 오후 예정된 스케줄을 묻는 '질문 1'로 시작한다. 토론의 예열 과정이다. 그리고 총리는 일반적으로 제 1야당으로부터 6개의 질문, 제 2야당으로부터 2개의 질문을 받는다. 모든 질문에 총리가 직접 답한다. 이전에는 관련 부처 장관에게 답하도록 할 수 있었지만, 대처 총리 때부터 총리가 모두 답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총리의 답이 끝나면 야당 대표가 발언 기회를 얻는다. 총리가 답을 하고 벤치로 물러나 앉고 이와 동시에 야당 대표가 테이블로 나와 발언을 한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된 후 토론이 평의원들에게로 확대되는 게 일반적이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의원들은 손을 드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고 의장이 지명하면 발언권을 얻는다.
하원은 열띤 토론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질문자와 답변자 모두 간단한 메모는 가능하지만 써온 걸 보고 읽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분명한 자기 관점을 견지하면서 적절한 열정과 상대에 대한 약간의 비꼼 혹은 블랙 유머가 곁들여진 발언을 하는 걸 이상적으로 여긴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 정연하기만 하면 지루하고 동료 의원들과 대중에게 호소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총리와 야당 대표는 상대편 뒤 벤치에서 보내는 야유가 크더라도 주눅 들지 말고 여유 있게 웃어야 한다. 많은 경우 양쪽 대표는 한쪽 팔을 테이블 위에 있는 디스패치 상자(Despatch box)에 괴고 몸을 의장을 향해 약간 비틀고 의장과 상대편 의원석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하는 식으로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유지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여야를 대표하는 두 라이벌은 매주 30분씩 수 백 명의 동료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은 정책에 대한 제반 실력을 쌓으면서 당내 리더십을 확고히 하고 당대표로서 대중에게 잘 호소해 총선에 이르는 필수 과정이다. 각종 현안에 대한 관심 정도, 이해도, 그리고 시각이 언론과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에 어느 쪽도 거품이 낀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 의원 내각제에서 잠정적 기대치나 스타성에 의존한 지도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가 대통령제에서 의원 내각제로 전환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두드러지게 언급되는 "소통과 토론"은 한국 사회가 의원 내각제의 강점을 원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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