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의 역사 성수역에 전시된 구두를 신은 흥친왕의 사진
박광한
그런데, 이번에 성동구청에서 해당 전시공간을 다시 탈바꿈하는 데 꽤 많은 예산을 들인다고 한다. 소중한 혈세가 다시 투입되는 것이기도 하고 성수역 근처에서 수제화 공방을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구두 테마 공간의 환경개선에 제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해당 전시공간이 성공적으로 탈바꿈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각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지역의 환경개선을 하지만,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투입된 예산에 비해 활용도가 낮으니 그 가치를 쓸모 있게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길 바라며 필자 나름 그 공간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성수역의 전시공간에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이유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구두 제작 체험공간도 있으면 좋겠으나, 생업에 바쁜 수제화 장인들이 매번 체험공간에 상주해 있기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또, 상설로 운영되지 않고 가끔 일회성으로 운영된다면 구두 테마 공간은 또다시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늘 상설로 할 수 있고, 구두 테마 공간에서 좀 더 체류할 수 있으며, 구두와 어울리는 콘텐츠로 조선의 커피, '양탕국'을 생각해보았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무료공간을 구두 테마 공간 곳곳에 마련하는 것도 함께해서 말이다.
커피라면 성수동에도 카페가 많아서 흔한데 굳이 양탕국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것이 양화의 역사와 함께 말할 수 있는 커피이기 때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사이 변화의 시기, 양탕국와 함께 양화, 양복, 양장 등 서양 문화 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양탕국하면 다소 낯선 이름이겠지만,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왔을 때 우리말로 명명한 이름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커피는 해외 브랜드 커피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양탕국은 우리나라의 문화가 진하게 배어있고 역사적인 추억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커피다. 고종황제가 명성 황후를 잃고 약 1년간 지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덕수궁으로 돌아와서도 커피 맛을 못 잊어 자주 마셨다고 한다. 커피를 우리나라 말로 명명하여 '양탕국'이라 하였는데, 한국에서는 경상남도 하동에 양탕국 체험 마을에서 그 시대의 양탕국을 맛볼 수 있다.
양탕국을 만드는 방식은 우림식, 절임식, 달임식, 감응식 등으로 할 수 있는데 방식도 우리 고유의 방식이고 양탕국을 사발 그릇에 담아 식혜나 숭늉처럼 마실 수 있게 담아내는 방식도 지금의 커피와는 사뭇 다르다. 바로 이 양탕국을 성수역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맛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양탕국을 만들고 전하는 고유의 방식은 하동의 양탕국 체험 마을과 제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면, 해외 커피 브랜드에 지급하여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우리나라 그 시절의 문화를 전하는 양탕국 체험 마을에 지급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동의 양탕국 체험 마을도 함께 알리며 구두의 역사와 함께 그 시대의 역사를 양탕국의 향과 더불어 소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