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유해 입장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2021.8.18
연합뉴스
지난 광복절은 유독 더 뜻깊은 광복절이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대승을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국의 귀국에 여·야 할 것 없이 존경의 뜻을 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고 등급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최고 등급 훈장을 받은 홍범도 장군이지만 생전 장군의 삶은 늘 위태로웠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를 견인한 이후 홍범도 장군은 일제의 표적이 되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패한 뒤 일본은 이를 위한 보복으로 만주 내 한인들을 학살하는 간도참변을 일으켰고, 독립군들은 일제의 토벌을 피해 만주, 연해주, 러시아 등으로 흩어졌다.
자유시로 이동한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은 그곳에서 자유시 참변을 겪었고, 조선인들을 빌미로 일본군이 러시아를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선조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렇게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홍범도 장군은 노년을 극장 수위로 보내며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75세의 나이로 이역만리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홍범도 장군은 한국 독립 운동사의 영웅이지만, 장군의 삶은 난민과도 같았다. 국권을 피탈 당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먼 타지에서 오매불망 독립만을 꿈꾸시며 끝내 독립된 땅을 살아생전에 밟지 못하셨다. 장군은 7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때 이후 여러 사정으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다.
학창시절부터 단일민족이라는 교육을 받아온 우리에게는 타민족과의 공존이 두려울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막히고 대륙으로 가는 길은 북한에 막혀 사실상 섬나라처럼 살아온 우리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코란을 읽는 이슬람 민족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탈레반과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일제의 토벌을 피해 원치 않게 조국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탈레반의 폭정을 피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나라를 잃어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정말 난민 수용에 대한 아무런 책임과 의무가 없을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일부 정치인과 난민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마치 선조들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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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 대한 비난 멈춰야... 홍범도 장군은 난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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