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는 춤을 춘다"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18화 44번째 작품 교정을 보면서

등록 2021.08.23 17:41수정 2021.08.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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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교 시절 학생기자였다. 그때 나의 모교에서는 연 4회 학보와 연 1회 교지를 발간했다. 그때 홍준수 선생님이 편집지도 교사였는데, 대단히 뛰어난 편집 베테랑이었다. 그분을 통해 교정부호부터, 편집요령을 배웠다. 지금 되돌아봐도 그때 제대로 배운 듯하다. 그래서 당시 우리 학교의 신문 및 교지가 전국 고교생학생신문 교지 콘테스트에서 해마다 '최우수작'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아무튼 그때 배운 솜씨로 대학 시절에도 잠시 편집자로, 교사가 된 이후에는 내가 편집지도 교사로 많은 올챙이 기자들을 지도했다. 그들 가운데는 몇 제자는 방송 및 신문기자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교정은 잘해야 본전이다. 분명 3교까지 열심히 눈이 아프도록 봤는데도 인쇄물이 나온 뒤 오탈자가 나올 때는 망연자실하기 마련이다. 지난날 어떤 신문사 교열자가 대통령의 '대(大)'를 문선공이 착각하여 '견(犬)'으로 뽑은 글자를 바로잡지 않아 견책을 당했다는 얘기도 현장에서는 있을 법한 얘기다. 고교시절 홍 선생님은 학생기자들에게 귀에 익도록 일렀다. 숱한 잔소리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씀이다.

"활자는 춤을 춘다."
  
 그동안 내가 펴낸 책들
그동안 내가 펴낸 책들박도
 
지식 습득은 여전히 책이다

나는 그동안 숱한 책을 펴낸 뒤 본문을 읽다가 오탈자가 나오면 쥐구멍을 찾고 싶도록 부끄러워진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튼 저자가 교정 과정에서 소홀히 지나친 결과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통산 3교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보다 앞선 이웃 일본은 통상 5~6교를 본다고 한다. 그들이 그런 까닭은 출판 후 오탈자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의 한 방안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출판사와 어린이용 도서를 펴내면서 편집자와 무려 8차례나 피드백이 오갔다. 편집자는 아주 짜증이 나도록 저자의 진을 뽑았다. 그런데 역시 그 책은 나온 뒤, 오탈자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출판 불황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올여름, 이번 가을에 나올 신간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교정으로 복더위를 잊고 지냈다. 엊그제 3교를 본 뒤 교정쇄를 출판사로 보내고 이제는 마지막 OK 교정을 앞두고 있다. 어제오늘 보낸 교정지를 다시 보자, 3교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봤는데도 그새 세 곳의 오탈자를 발견했다. 마지막 OK 교정을 볼 때는 목욕재계, 참선한 다음, 기도하는 자세로 봐야겠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글을 읽을 때는 돋보기안경을 쓴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잔글씨에서 오탈자를 찾는 일은 '솔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하지만 내 책을 읽어줄 독자들의 짜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나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행복한(?) 일도 앞으로 얼마나 더 하게 될지 자못 염려스럽다.


이즈음 출판계가 엄청 힘드나 보다. 영상문화가 판을 치고, SNS가, 유튜브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종이책 활자문화를 밀어낸 셈이다. 하지만 지식 습득의 원조는 책이다. 그 무엇보다도 지식 습득에는 책을 따를 게 없을 것이다. 

늘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사람으로, 출판산업이 다시 문화의 총아가 되는 날이 돌아오기를 꿈꾼다. 
#치악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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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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