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서 정의당 구로구의원.
김희서 제공
이런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리는 미담은 왜 한국이 아닌 먼 나라 독일의 이야기인 건지 조금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여기가 우리가 선 곳이고,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부터 균열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장벽이자 현실인 것을.
결과인 동시에 과정인 조례... 어떻게 만들어지냐면
국회가 법을 만들듯, 기초의회는 조례를 만든다. 조례는 지방정부를 움직이게 하는 명령어이자, 지방정부 정책과 예산의 법적 근거다. 조례는 "~하여야 한다"는 말로 지방정부를 채근하고,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언어로 행정의 자율성을 열어 준다.
김희서 의원은 2014년 방사능 안전급식조례를 주민발의 방식으로 추진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서울시 최초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지원 조례'를 제정한 성과도 의미 있지만, 주민발의를 추진하면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과정 자체도 높게 평가할 만했다.
물론 모든 조례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조례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유권자 2% 이상이 서명하여 의회에 자동상정되도록 하는 주민발의가 있다. 둘째, 기초의원이 의원 전체의 25% 이상 동의를 받아 조례안을 상정할 수 있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의회에 조례안을 상정하는 집행부 발의다.
특이한 점은, 기초의회에서 심의하는 조례안의 거의 대부분이 집행부 발의라는 것이다. 의정활동을 하도록 선출한 기초의원이 조례를 주로 발의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기초의원을 준비하는 몇몇 수강생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채팅창에 이런 글이 올라온다. "그럼 우리 기초의원이 아니라 지자체장 선거에 나갑시다 ㅋㅋㅋ" "OOO를 ㅁㅁ구청장으로!"
물론 지자체장 멋대로 조례안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 조례안이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집행부 발의안에는 상위법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바뀜에 따라 조례를 만들거나 고치는 경우가 다수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시장(특별시나 광역시의 경우 구청장)이 바로 의회에 올리는 조례안이 대부분이라면, 그 말은 지방정부 역할을 규정하는 명령어를 바꾸려는 시도가 의회보다 집행부에 의해 더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초의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되었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주를 감시하고 잘 견제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뿌리깊은 지역정치인, 바람에 아니 움직이나니
'바람'이 불고 스타정치인이 생겨나는 패턴이 이번 대선 정국에도 반복되고 있다. 시민과 호흡하며 시민의 대변자 노릇을 한 번도 자처해 본 일 없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단숨에 대권 도전해 나라를 바꾸겠다며 유권자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물론 내민 그 손을 감히 민망하게 만들기, 그의 정책들을 따져 묻고 내실이 없다면 표를 주지 않기만 해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손을 뿌리친다고 해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사람들이 표를 달라고 손을 벌리는지, 그 손은 동네에서 어떤 일들을 해 온 손인지를 꼼꼼하게 알아봐야 한다.
연고도 업적도 없이 선거철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이들이 받아가는 기회만큼이라도,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며 주민의 선택을 받고, 조례를 만들고 주민의 삶을 바꿔 온 지역 일꾼들에게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기회를 누구에게 줄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선거권을 쥔 우리, 유권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