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을 선언하자 카불 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군중이 몰려들었으며 결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공항은 마비됐다.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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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까지 점령하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 직원들과 미군을 도와주었던 사람들까지 공항으로 몰려서 탈출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있으려니, 1975년 사이공에서 벌어졌던 긴박했던 미군 철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20년이나 개입한 아프가니스탄에도 미군을 도와주었던 통역관 및 '부역자'들이 있을 것이고, 탈레반이 없는 세상에서 직장을 잡고 사회활동을 했던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국에서는 미군을 도와주었던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얼마 전만 해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는 베트남에서 철수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북베트남군이 시시각각 다가오던 시점에 사이공에서 급하게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쳤던 경험이 카불에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바이든은 말했다.
그러나 비행기 형태만 헬리콥터에서 군 수송기로 달라졌을 뿐 카불에서 촌각을 다투면서 도망나오는 것은 마찬가지 모습이어서 미국과 바이든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남베트남 정부군에게 무기를 주고 훈련을 시켰던 것처럼, 미국은 아프간 정부군에게도 똑같이 무기를 주고 훈련을 시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베트남전쟁보다 훨씬 더 긴 20년간이나 전쟁을 벌였으며, 훨씬 더 많은 돈과 무기를 투입했다.
그러나 미군 철수가 개시된 이후 아프간 정부군은 탈레반을 만나기도 전에 공포에 질려서 도망치고 스스로 궤멸했다. 그들은 무기를 모두 가지고 도망갈 수 없었으므로 그들에게 남겨진 무기는 모두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다. 그들의 도덕적 타락과 무기력은 그들의 스승인 미국의 오점이기도 하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미국은 베트남에 이어 치욕적인 전쟁 패배의 오명을 안게 됐다.
미국이 '세계 경찰'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참으로 허망해 보인다. 수만 명의 미군과 수조 달러의 자금을 투입한 이후 미국이 이처럼 카불에서 급하게 도망나와야 하는 것은 제국의 권위와 위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이런 일을 두고 엉뚱하게 대한민국에서 미군이 철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는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대한민국을 그렇게 미국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머리 나쁜 사람들을 이해하고 설명해주기는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