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비친 산책길
김준정
몸은 정직하다. 온몸의 감각을 통해서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걸 좋아하지, 가방 하나, 구두 하나에 만족하지 못한다. 걸으면서 지난 어느 해 가을을 떠올리자 마치 그 추억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나는 시공간을 벗어나고 다시 한번 그때와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미 충분히 행복한 상태에서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렀다. 드라이브 스루로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주문해 집에서 챙겨 온 텀블러에 담아 마시면서 얼마나 사치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이게 뭐라고, 커피 한번 쳐다보고 아리송한 기분에 빠졌다.
그래서 생각한 게 행복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라는 감정이라는 결론이었다. 대학에 합격하면, 취업을 하면, 성적이 오르면, 하는 조건이 필요한 건 행복이 아니다. 조건이 성립되는 순간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게 될 테니까.
이만하면 충분하다, 는 건 안일한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정도도 괜찮지만 한번 해볼까, 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느긋하면서 진지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일을 오래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이것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몰두하는 건 단기간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스스로를 소모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하는 말로 번아웃이 되어서 어느 순간 모든 게 무의미해져 버릴 수 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있으면 돈이나 명예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나의 소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유리해 보이는 길로 달렸지만 막다른 벽에 마주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나를 혹사시키고 삶에서 나를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기분이 드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미각, 청각, 시각, 촉각, 후각 하나만 즐길 수 있는 방법보다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면 좋겠다. 그게 나한테는 등산이지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