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도보 행진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의 모습. 이들은 3일부터 10일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가 있는 원주부터 청와대까지 걸을 예정이다.
신유아
[기사 수정 : 10일 오전 9시 10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
7월 23일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집회를 앞두고 정부와 강원도 원주시가 밝힌 입장이다. 정부와 원주시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 말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었다. 정부는 코로나19 전파 위험을 강조하면서 집회를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로 만들었고 집회는 방역의 적이 되었다. 정치인과 언론도 같이 거들었다.
공공운수노조는 당시 원주시의 거리두기 2단계에 맞춰 500m씩 거리를 두고 8개 거점에서 99명씩 집회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7월 21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에서 "대규모 집회계획을 철회해주길 바란다"며 "특히 강원도와 원주시는 이 문제에 대해 적극 대처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원주시는 거리두기 3단계 적용을 발표하면서 집회만 4단계(1인 시위만 허용)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하루 전에 갑자기 집회가 금지된 노동조합은 집회도 동일하게 거리두기 3단계 적용을 요구했다. 결국 강원경찰청은 거리두기 지침을 어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22개 중대 1600여 명을 투입해 건보공단 인근 3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차량 진입을 막았고, 건보공단 주변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철제 펜스를 설치해 원천봉쇄를 했다.
혼돈의 원주혁신도시…곳곳에서 대치·입씨름(2021.7.23. 뉴스1)
민노총 언덕 기어오르며 집회…그날 원주 확진자는 최다였다(2021.7.23. 중앙일보)
민노총 집회하겠다는 의지…기어서 산까지 넘었다(2021.7.23. JTBC)
강원도 몰려간 민노총, 대규모 집회 막히자 줄줄이 언덕 넘었다(2021.7.23. 아시아경제)
"민노총 집회 막아주세요" 엄마들이 나섰다(2021.7.23. 동아닷컴)
간곡한 자제 요청에도 집회 강행한 민주노총(2021.7.23. 연합뉴스)
국민의힘 "민주노총 막무가내 '떼법' 반드시 엄벌해야"(2021.7.23. 한국경제)
'원주 집회 강행' 민노총… 野 "본인들 수도권 감염 두려워 '만만한' 강원서∼"(2021.7.23. 세계일보)
이것은 집회 당일 언론의 기사 제목들이다. 일부만 소개한 것이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상담노동자의 노동 현실이나 파업의 이유, 집회 금지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는 드물었다. 특히 원천봉쇄로 집회 장소로 갈 수 없게 된 노동자들이 동료를 만나기 위해 언덕을 오르던 사진을 집회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좀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부와 언론을 통해 집회에 대한 비난과 처벌의 메시지만 듣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집회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기보다는 시민을 위협하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집회나 파업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원주시가 다른 사회활동처럼 집회도 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했다면, 경찰이 원천봉쇄를 하지 않고 방역과 함께 하는 집회를 보장했다면, 무엇보다 건보공단이 상담노동자들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인권의 원칙이 실종된 사회에 사회적 소수자의 삶과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
정부의 '법과 원칙'에 없는 원칙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실외에서는 감염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는 야외집회가 실내활동보다 전파 위험이 낮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회를 다른 사회활동에 대한 거리두기 지침보다 항상 강도 높게 제한/금지했다. 과학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정부의 집회에 대한 방역지침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듯이 그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사회적 소수자의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봉쇄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는 방역을 이유로, 시민의 생명을 핑계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방역을 방패 삼아 근거 없이 집회를 금지한다면 정부의 방역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집회를 탄압하겠다는 의도만 노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방역과 집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원칙은 방역이 시민들의 일상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일상과 기본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안전한 집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방역당국이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어떻게 기본권을 제한하고 침해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본권을 보장하고 증진할 것인지가 코로나19 시기 방역당국의 목표이자 과제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특별 보고관은 <공중위생 위기 상황에서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발표했다. 아래 내용은 체크리스트 중 일부이다.
- 코로나19 관련 위협을 다루기 위한 긴급조치는 필요하고 비례적이어야 한다. 부과된 제한이 최대한 덜 침해적이고, 적절하고, 그 보호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면밀하게 맞춰졌으며, 해당 상황에 대한 대응 범위 내에서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 이동과 모임에 대한 제한은 예외를 허용하여 시민사회 행위자, 특히 언론인, 노동조합, 법률가, 인권옹호자, 인도적 지원과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들이 비상상황 동안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예외가 지켜지고 존중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은 경찰과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회의를 열고, 간행물을 발간하고,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민사 혹은 형사 소송을 포함하여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나 고용주의 대응을 비판할 수 있다.
- 국가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긴급한 국가 비상 상황에서 파업권은 제한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제한은 한정된 기간 동안, 그 상황에서 엄격하게 필요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선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법과 원칙'에 과연 인권에 대한 원칙,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 원칙은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렇기에 정부와 경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집회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다. 정말 방역을 위한다면, 더 넓은 공간에서의 집회를 보장하고 밀집한 경찰 인력을 최소화해서 집회를 위한 협력 임무를 부여하면 된다. 수많은 경찰을 동원하고 사람들을 좁은 공간으로 몰아넣는 것이 방역에 더 위협적이다. 그리고 집회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기 이전에 함께 방역을 실천하는 주체임을 인정하고, 안전한 집회를 위한 대화를 성실하게 해야 한다.
다시, 거리에 선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