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2020년도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로고.
국회사진취재단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이름을 바꾸는 '노력'마저 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시행됐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 탄압에 악용됐던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까지 포함할 경우에는 '치안유지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개명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1948년 이후로는 원래 명칭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신을 발판으로 지배권을 행사해온 정당, 자신을 실무적으로 운용해온 정보기관들은 어느 정도의 체질 개선에 더해 개명이라도 하는 태도를 보인 데 비해, 국가보안법은 어느 정도의 개정이 있기는 했지만 원래 취지를 그대로 고수하는 가운데 애초의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뻔뻔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지금뿐 아니라 1950년대에도 강했다. 자유당이 무술 경위 3백여 명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끌어낸 뒤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킨 1958년 12월 24일의 '보안법 파동' 당시에도 그랬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신
이때 언론을 통해 악법에 대한 저항을 외친 인물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할아버지다. 195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법이론적으로 본 보안법 파동'에 소개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발언 중에 "악법도 법률이라는 논법은 여기에 해당한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과 함께 이런 부분이 있었다.
"가사(假使, 설령) 국회의 절차를 밟아 적법하게 제정된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거나 국민생활에 적합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국민은 그 법률의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켜 입법부의 반성을 촉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에게서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악법'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1950년대에도 상당했음을 느낄 수 있다.
김병로 같은 법조인뿐 아니라 국회의원들 역시 '악법'에 대한 충성심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보수 집권당의 거수기로 동원되던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1953년에 벌어진 묘한 풍경이 그런 분위기를 알려준다.
구형법이라 불리던 일본 형법이 폐지되고 신형법으로 지칭되는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된 1953년 9월 18일로부터 얼마 전이었다. '이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관련 규정을 신형법에 넣자'는 주장이 국회 내에서 제기됐다. 2004년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행한 <국가보안법의 운영 실태와 개정 방안>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1953년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신형법안을 성안하는 단계에서 법사위 안(案)의 기초자들은 1948년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신형법(안)의 내란선동·선전죄, 각종 외환죄의 선동·선전죄, 폭발물사용선동죄에 흡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마련하여 본회의에 상정한 바 있다."
본회의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표결 결과가 약간 묘했다. 위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본회의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관한 투표 결과는 제1차 투표에서 재석 원수(員數) 102인, 가(可)에 11표, 부(否)에 0표로, 제2차 투표에서는 재석 원수 102인, 가에 10표, 부에 0표로 나타났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인가'에 관한 본회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 2차 투표에서 찬성표만 각각 11표, 10표가 나왔을 뿐이다. 대다수 의원들이 기권표를 던졌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결됐지만, 반대표가 아닌 기권표에 의해 부결됐다는 사실은 1953년 당시의 국회의원들이 보안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는데도, 이 악법은 70년 넘게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보수 정당이나 정보기관들과 달리, 이 악법은 이름도 바꾸지 않은 채로 뻔뻔하게 서 있다.
'국보법 폐지' 오래 제기됐으나 좌절된 이유
그런 국가보안법을 겨냥해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나, 그럼에도 번번이 좌절돼 왔다. 이 법을 옹호하는 세력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약해져 왔는데도, 이 법률만큼은 변함없는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