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 10일 자 '황산벌 백제 오천결사대 합장 무덤 발견'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시장골로부터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50m 떨어진 천호산 중턱에서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우다 전멸한 백제군 오천결사대 병사의 합동 무덤으로 보이는 백제의총이 발견됐다"고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신문 갈무리
권 이장이 기자에게 옛 신문 기사를 내밀었다. 1971년 4월 10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황산벌 백제 오천결사대 합장 무덤 발견' 제목의 기사에는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우다 전멸한 백제군 오천결사대 병사의 합동 무덤으로 보이는 백제의총이 발견됐다,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시장골(병사들의 시체를 묻은 곳)로부터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50m 떨어진 천호산 중턱이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는 이어 "천호산 중턱 궁장골(군사들의 활을 묻은 곳) 언덕바지에 있는 무덤 일부가 도굴 흔적을 보인 채 보존돼 있는데 주민들로부터 말 무덤 또는 큰 무덤으로 불려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홍사준 백제문화연구회장은 무덤 주위에 시장골과 중상골이 있고 인근에 백제 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천결사대 병사시체의 일부를 묻은 백제의총이 틀림없다"라는 고증을 덧붙였다.
<동아일보>에 등장한 논산 천호산이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인 송정리 마을 뒷산이고, 천호산 중턱은 우회도로가 지나는 노선이다. 또 기사와 논산시지에 등장하는 시장골과 중상골, 궁상골이 모두 천호산에 있다. 하지만 말 무덤은 이후 충남도경찰청 의무경찰대가 들어서면서 진입로 공사로 송두리째 사라졌다. 관련 유적지들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황산벌 전투와 관련된 송정리의 지명은 이게 끝이 아니다. 사실고개(백제군이 활을 쏘는 훈련장), 중상(衆傷)골(오천결사대가 신라군과 싸우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곳), 대목골(사장골 위에 있는 골짜기), 황산(천호산의 옛 이름) 등 관련 지명과 유래가 이어진다.
천호산 벼랑에 자리한 월은사(마곡사 말사)에서는 지금도 황산벌 오천결사대를 추모하고 있다. 월은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백제 말기 계백장군과 오천결사대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유래를 들려준다.
"오천결사대 뿐만이 아닙니다. 천호산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복하고 신검의 항복을 받은 산이고, 산기슭에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왕명으로 창건한 호국사찰이 있어요. 또 마을에는 한학을 익히며 살아가는 한학마을도 있고요. 이런 마을의 성산에 터널을 뚫고, 마구 파헤쳐 두 동강을 내는 게 말이 되냐고요."
천호산은 고려태조 왕건이 길몽을 꾼 후에 이곳에서 나타난 군사들의 도움으로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담긴 산이다. 본래 지명은 '황산'이었으나 후삼국을 통일한 후 하늘의 보호가 있었다고 해 천호산(天護山)으로 불렸다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