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는 폐교를 앞둔 소규모 학교가 많다.
이준수
나는 십 년을 작은 학교에서만 보내다가 작년부터 큰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작음의 기준은 한 학년에 학급이 두 개 이하인 학교다. 강원도에서는 춘천, 원주, 강릉을 제외하면 소규모 학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대 도시라 해도 인구 20~30만의 소도시지만, 여기에서는 꽤 큰 동네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 지난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전교생 스무 명 규모의 학교에 몸담고 있었다. 내가 근황을 전하자 "큰 학교 가니까 어때? 좀 달라?"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는 학교가 다 비슷하죠, 하고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라 다르긴 다르더라구요, 하고 말았다.
작년 우리 반 A는 교우관계로 속앓이를 했다. 함께 어울려 다니는 그룹 내의 우정 문제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심하지 않았으나, 미묘한 의견 불일치와 오해로 A는 자주 힘겨워했다. 사춘기 여학생 간의 갈등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누가 보면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다고 평가할 만큼.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작은 학교에서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시골에서는 여학생 관계가 삐그덕 거리면 학부모들도 덩달아 삐그덕거린다. 워낙 좁은 마을이다 보니 어른들은 친인척, 직장 동료 관계 등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수가 적어 유치원부터 초, 중, 고에 이르기까지 같은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 학교뿐 아니라 학급까지 똑같이.
이런 형편이니 구성원 간 인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서로 얼굴 붉히는 사안을 덜 만들고, 설령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미덕이다. 그래서 나는 A도 적당히 싸우다가 화해하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지금껏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왔으니까. 하지만 A는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일부러 맞추고 싶지 않아요. 어색해도 그냥 있을래요. 올해만 지나면 되잖아요."
농사 망쳐도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 뭐, 하는 농부의 말투다. 나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과연 시내의 큰 학교라고 생각했다. 한 학년에 다섯 반이 되고, 각 반에는 스무 명이 넘는 친구가 있다. 기질이나 성격 차이로 인해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은 학교였다면 시도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큰 학교라면 가능하다. 실제로 A는 새 학년에 올라가면서 새 단짝을 만나 잘 지내고 있다.
작은 학교의 어마어마한 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