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가 방사를 기다리고 있다.
김영진
그렇게 쌀이는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고 우리 집에서 우선 며칠을 지내게 되었다. 쌀이를 이 몸 상태로 방사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쌀이의 상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찰칵."
20년 2월 11일. 추운 날씨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어머니는 케이지를 나가는 쌀이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다른 고양이와는 달리 유난히 우리집에 오래 데리고 있던 녀석이었다. 몸이 약한 이 녀석을 수술 후 몇 주 만에 밖으로 돌려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쌀이는 그렇게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는 녀석의 모습.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괜히 수술을 시킨 것이 아닐까' 그치만 몸이 아픈 녀석이 새끼를 밴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몇 달을 지냈다. 그 사이에도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쌀이를 챙겼다. 그런 정성 때문이었을까. 다행히도 쌀이는 원래 살던 곳에 잘 적응해 주었다.
녀석을 돌보는 데는 예상 외로 힘이 많이 들었다. 인간관계 부분에서도 힘이 들었는데, 내가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 분도 있었다. 보통은 쌀이의 상태를 설명하면 이해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분들께 말했다.
"얘네들, 어차피 곧 죽어요."
이 말을 꺼내는 것은 언제나 힘겨웠다. 19년 1월부터 시작한 길고양이 보호였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벌써 몇 마리의 길고양이를 보냈던가. 사고로 죽든 얼어붙어 죽든 결국엔 고양이들은 곧 우리 품을 떠났다. 쌀이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분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그저 한없이 쌀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셨다. 퇴근 후 걱정스러운 얼굴로 쌀이를 살피는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차마 그런 소리를 했다고 실토할 수 없었다.
제 발로 케이지를 나간 녀석
"비었네?"
방사 후 1년여가 지난 21년 7월 5일. 쌀이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쌀이가 계속 안 보인다고 해서, 내가 먹이를 들고 녀석의 집을 직접 찾은 것이다. 잠시 멀리 돌아다니는 일도 있었지만 녀석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적은 없었다. 저녁 즈음 보러 가도 역시 쌀이는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이후로 약 한 달간의 기다림이 이어졌다. 돌아올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쌀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련히 좋은 곳에 갔거니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괴로웠다. 아마 어디선가 쓰러져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자고 쌀이를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몇 주, 쌀이가 있던 자리는 21년 8월 3일, 지금까지도 계속 비어있다.
나는 비어 있는 녀석의 자리를 보며, 녀석이 들개와 싸울 때를 떠올렸다. 바로 19년 8월 20일의 일이었다. 큰 소리를 내서 들개를 쫓아내려고, 신발을 벗어 들어 그걸로 얼마나 땅을 내려쳤는지. 다행히 그 소리에 들개는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갔었다. 그렇게 쌀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서웠던 경험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녀석을 위해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었다. 그저 사라진 쌀이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쌀이를 생각하면 나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녀석 생각에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가 많았다. 녀석이 너무 불쌍했다.
"사람 돕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
나는 줄곧 소방관처럼 사람들을 돕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봉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 조그마한 이웃 주민들을 도우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년여의 수업. 그것에서 배운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들이었다. 조금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 다음엔 사람을 도우리라. 사라져버린 쌀이가 그리웠지만 다시 힘을 내야 했다. 나는 젖어 드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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