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 중 친구를 만난 대형견
박은지
대형견 리트리버 여름이를 데리고 산책하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주 느껴진다. 동네에 흔치 않은 대형견이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다가 막내로 대형견을 입양하면서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대화의 장이 열리고, 산책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일부 견주들과는 소소한 친분이 생기기도 했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현대인으로서는 이 변화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하지만 열 번의 좋은 경험이 있더라도 그중 한두 번의 나쁜 기억이 생기면 그걸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좋은 댓글이 백 개 있어도 악플 한 개가 더 신경 쓰이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물론 대형견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종종 나와 여름이에게 다가와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다 보면 나 역시 경계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101번째 듣는 그 질문
저쪽에서 누군가 여름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대형견 2년여의 산책 경력이 허투루 쌓인 것은 아닌지, 왠지 기분이 쌔한 촉은 꽤 잘 들어맞는다. 아니나 다를까, 낯선 사람이 여름이 앞에 우뚝 멈춰서서 묻는다.
"이 개, 입마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나도 상냥하게 대답했다. '정부에서 정한 맹견 5종은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리트리버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아서 입마개를 안 해도 돼요'라고(농림축산식품부에서 국내 동물보호법상 지정한 맹견 5종은 '도사견,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아메리카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테퍼드셔 불테리어'인데 실제로 일상적인 산책 길에 만날 일은 드물다).
물론 공격적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맹견이 아니라도 입마개를 착용하도록 권고되지만, 여름이는 짧은 목줄을 한 채로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내 대답에 대부분 수긍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수치를 밝히자면 대답을 듣고 '그렇구나' 하고 가던 길을 가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해야지. 무서운데. 이렇게 커서."
나는 잠시 고민한다. 똑같은 지적을 101번째 듣다 보니 끈기 있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려는 의욕이 거의 바닥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겐 수없이 듣는 말이라도 저 사람은 처음 한 말인데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없으니, 그냥 적당히 대답하고 지나치는 쪽을 선택한다. 사실 이 정도면 양반이기도 하다.
대뜸 반말로 소리부터 지르는 어르신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빈말로라도 '네, 다음에는 그럴게요' 하는 대답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개가 누구의 안전도 침해하지 않는 한, 개에게도 평생 입마개를 하며 살아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형견 견주의 의무와 책임
15년 동안 한 손으로도 번쩍 들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소형견을 키웠다. 가끔 강아지가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거나 짖기도 했지만, 힘들이지 않고 한 손에 든 목줄로 금방 제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경각심을 느낀 적은 없었고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대형견은 다르다. 대형견 중에도 작은 편에 속하는 30kg의 여름이가 줄을 끌고 걸으면, 나는 목줄을 감아쥐고 온 힘을 다해서 붙잡아야 한다. 작은 개는 안 물고 큰 개는 무는 것은 아니지만, 큰 개는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또 실제로 종종 발생하는 개 물림 사고만 봐도, 견주가 방심하는 순간 처참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니까 대형견을 키우는 견주에게는 보다 무거운 책임과 케어할 의무가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내 개를 백 프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동 패턴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해도 개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이므로 언제든 돌발 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이를 키우면서 제일 우선시한 고민은 사회화 훈련에 대한 것이었다. 개인기를 배우는 건 다음 문제고, 사람들 사이에서 원활하게 살아가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공격성이 없더라도 여름이가 다가가면 그 사람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책할 때 보호자의 곁에 붙어서 걷도록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북적이는 장소에 가더라도 돌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차분해지는 법도 배워야 했다. 흥분도가 높았던 여름이를 집에서 훈련하기 어려워 훈련소에 위탁하여 보호자와 같이 하는 훈련도 받았다.
대형견을 키우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털 빠짐, 주기적인 산책과 운동, 경제적인 부분 등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사회에서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하는 견주의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이가 누구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사람도 개도 완벽하지 않기에 여전히 집 밖으로 한 걸음 나가는 순간부터는 타인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대형견 견주들이 대형견이 누군가에겐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노력하고 있다.
사람과 개가 어우러져 살기 위한 무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