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예술가 이민하 작가(43)의 '이분법과 맹목성' 제목의 작품. 쇠가죽 대전지도 위에 전기인두로 '부역자', "빨갱이' 글씨를 새기고 있다. 불도장을 찍는 위치는 옛 충남도청(중구 선화동)에서 대전형무소(중구 중촌동), 대전 골령골 부근이다. 이 곳에서는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심규상
전시실 지하 공간에 큼지막한 누런 가죽이 펼쳐있다. 쇠가죽으로 만든 대전 지형도다.
시각 예술가 이민하 작가(43)의 작품으로 제목은 '이분법과 맹목성'이다. 사각형 모양의 분지인 대전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지형도 한 부분을 컴퓨터로 지정된 전기인두가 천천히 오가며 불도장을 찍는다. 전기인두가 처음 머문 공간은 대전 중구의 한 공간이다. 유심히 살피니 옛 충남도청(중구 선화동)에서 대전형무소(중구 중촌동) 부근이다. 살짝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전기인두가 검게 가죽 위에 새긴 글씨는 '부역자'라는 세 글자다.
전기인두가 드론처럼 공중으로 서서히 옮겨가 안착한 다음 장소는 대전 동구 낭월동이다. 낭월동은 대전형무소에서 수감된 정치범들이 끌려가 암매장된 곳이다. 전기인두는 낭월동 골령골 골짜기 전체에 이번에는 '빨갱이'라는 불도장을 찍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옛 충남도청과 대전형무소, 대전 골령골에서는 민간인 학살의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옛 충남도청 땅에서는 가해자들이 머물렀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워커 주한 미 대사, 신성모 국방부 장관, 정일권 참모총장, 이우익 법무부 장관, 백성욱 내무부장관 등이 임시 정부 사무실로 사용된 충남도청을 분주히 오갔다. 그들은 손에 펜을 들고 대전의 지도를 살피다 대전형무소 부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다음 그들이 체크한 곳은 동구 낭월동 골령골이다.
직후 대형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들은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동구 낭월동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골짜기 입구에서야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골짜기를 울리는 총소리가 귀를 때라고 진동하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전기인두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총알이 박혔다.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로 가는 길'과 '골령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