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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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도로변 인도를 따라 대여섯 마리의 들개 무리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속도를 줄였다. 이 녀석들이 겁도 없이 아침에도 보란 듯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다. '놀래라.' 다행히도 그때 봤던 도사견은 보이지 않았다. 시추, 포메라니안, 진도 믹스. 견종을 보아하니 사람들 손에 반려동물로 길러지다가 버려진 듯해 보이는 개들이었다.
운전하는 도중이라 녀석들의 사진을 찍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이 녀석들의 모습을 어머니께 알리기 위해, 나는 무리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차를 몰았다. 녀석들의 털은 흙먼지가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웃긴 점도 있었는데 녀석들은 이 더운 날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사람 같았다.
"몸이 아픈가?"
그러던 중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무리의 가운데 있던 개가 다리가 하나 없는 것이다. 무리는 그 녀석을 감싸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속도를 맞춰 주는 듯했다. 모두들 웃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소풍이라도 같이 나온 걸까.
나는 녀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그들을 지켜봤을까.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뭐지?' 몸이 잠시 경직되고 시선은 서서히 내려갔다.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설마?' 이상한 감정의 정체는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이런 훈훈한 풍경을 보고 부끄러움이라니. 처음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았다. 그러던 중 확신이 섰다. '아마 이 더러운 기분은 다리 하나 없는 저 개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그 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녀석은 연신 혓바닥을 내밀며 친구들과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녀석을 보고, 나는 문득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녀석을 떠올렸다.
그 친구는 학교를 마치면 늘 무표정한 얼굴로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내가 본 건 그 모습뿐이었지만 분명 그 친구는 학창 시절 내내 외로운 등하교를 했을 것이다.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소아마비를 가진 그 친구와 어울리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나는 개만도 못한 자식이구나'
녀석들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우리들이 학창 시절 그 친구와 저렇게 어울렸다면 걔도 웃으면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다들 싫어했기 때문이야.'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애써 사실을 부정했다.
입으로는 '더불어 사는 삶'을 외치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던 내 모습에 진한 역겨움을 느꼈다. 어느덧 룸미러 뒤로 녀석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젯밤 비가 개어서인지 하늘은 서늘할 만큼 청량했다. 다리를 지난 차는 한참을 말없이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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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만도 못한가?" 들개 무리에서 떠올린 친구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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