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대한제국 시기 민의(民意)를 수렴하는 ‘공론의 장’으로 한양 도심에 만들어진 최초의 도시근린공원, 탑골공원 모습이다.
이영천
그럼에도 가로망이 정비되어 도시개조가 이뤄지고, 도심 한복판에 공원이 만들어 진다. 경운궁 주변 가로망 정비와 유럽의 도시공원을 모방한 '탑골공원'이다. 이런 도시개조가 이뤄진 계기는 온건개혁파로 알려진 박정양(朴定陽)과 이채연(李采淵)의 노력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내부령 제9호와 가로 정비
조미조약 체결(1882) 5년 후 박정양이 주미전권대신에 임명되어 1888년 1월 도미(渡美)한다. 번역관 이채연은 2개월 앞서 미국에 가 있었다. 박정양이 도미 11개월 만에 반강제로 귀국하고, 이채연은 대리공사 임무까지 마치고 1893년 10월 귀국한다.
그 후 조선은 동학혁명과 청일전쟁(1894), 을미사변(1895)을 겪고 결국 왕이 아관에 파천(播遷, 1896)하기에 이른다. 친일내각이 실각하고 친러·친미내각이 들어선다. 박정양이 권력 핵심이고, 이채연은 한성부판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