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겪는 문제들은 스스로가 시발점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 부재의 결과다.
픽사베이
청년에 대한 뿌리 깊은 대상화가 소수 기성세대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직도 많은 청년 정책이 '일 안 하고 노는' 청년들을 가르쳐서 '취업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가난한 주제에, 좋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주제에, 번듯한 일자리도 없는 주제에 따진다고 청년들을 비난한다.
왜 그들은 청년을 그렇게 '가난하고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싶어하는 것일까? 우리가 수많은 청년 사업장을 관찰한 끝에 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불쌍한 청년이 그들의 실적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심하게 신경 쓸 필요 없이 돈 조금 보태주면 감사하게 받을 청년, 일자리가 절박해 어떤 자리든 가리지 않고 받아 취업률을 올려줄 청년, 값 비싼 전문 상담 없이도 작은 위로에 감사할 가성비 좋은 청년들. 귀찮은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최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감사하게 받고, 그에 감동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줄 청년들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그러한 청년들의 응답은 자신들의 실적이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더 번듯하게 만들어줄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불쌍한 청년들을 돕는 훌륭한 어른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이런 이들은 청년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개선 사항을 바라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청년들이 머릿수를 채워주고, 행사 개최 횟수와 규모를 맞춰주고, 취업률이라는 성과를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이들의 시혜적인 태도에 더 분노하게 되는 이유는 청년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 때문이다. 우리가 가난하고 못났다며 손가락질받는 현실에는, 사실 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온 기성세대의 책임이 있다. 청년이 겪는 문제들은 스스로가 시발점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 부재의 결과다. 청년 실업률, 청년 자살, 이 모든 것은 사실 청년으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기존 사회의 문제가 처음 사회로 걸음을 내딛는 상대적 약자인 사회초년생들에게 더 폭력적으로 발현된 결과다.
청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기초적인 주거 환경, 빈곤 탈피, 노동 인권은 사실 사회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어야 할 권리다. 사회의 기반이 건전하고 튼튼하여 내 살 집을 구할 수 있고,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으며, 노동자로서 인권을 보호 받을 수 있다면 애초에 필요하지 않을 정책이다. 그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정책을 집행하면서 청년이 문제인 것처럼, 청년이 못나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시혜적 태도로 일관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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