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전 검찰총장). 사진은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2021년이 맞는지 의심했다. 52시간의 노동시간 제한을 두고, 정치인들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시작은 야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대선후보가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였다. 좋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논의를 하며, 정부의 52시간 제한을 비판한 것이다. 시대에 뒤처진 발언으로 인해, 여야의 정쟁이 한바탕 이어졌다. 문제의 발언을 한 사람은 '들은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라면서 자신의 발언을 왜곡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보냈다.
한국 굴지의 대표적 게임업체에서 과로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4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쿠팡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네이버를 비롯한 IT 기업들의 과로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른 지 고작 두 달이 지났다. 2017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8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한 해에 500명 안팎의 노동자가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120시간의 과로를 허용하라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CEO들의 고충을 듣는답시고, 한국 사회의 비극적인 현실을 한마디의 말로 뭉개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대선 후보의 현주소다.
정치는 사람을 갈아 넣는 '사장님'들의 욕망에 반응한다. WHO와 ILO가 제시한 장시간 노동의 기준인 55시간은커녕, 휴일 없이 하루에 17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120시간을 두고 논박이 오가고 있다. 그들의 언쟁 속에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안한 퇴근길을 가지고 싶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삭제되고, 불평등한 구조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소수 사장님들의 목소리만 주목한다.
플랫폼, 비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비전형 노동자의 산재 문제가 제기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2021년의 여야의 대선 주자 누구도 분명한 철학과 해결방안을 꺼내지 못한다. 소소한 정책은커녕, 노동 현실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누군가는 오늘도 다치고 죽고 있다. 대선이라는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분명한 과제를 숙의하지는 못할망정 '120시간'이라는 먼지 쌓인 역사책 속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래놓고 청년들에게 희망이니 공정이니 말할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5~8살 어린이들이 굴뚝 청소를 하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