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 중에 아르바이트했던 '이자카야(대중음식점)'의 메뉴판으로 어묵류가 없는 걸 보니 추워지기 전에 팔던 메뉴들 같다.
박진희
가지와 된장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타국에서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연구생으로 일 년 동안 팔자에 없던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미 직장생활을 몇 해 하고 시작한 공부여서 제 밥벌이는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게다가 감히 연구생 주제에 한국에서 들고 온 돈을 고스란히 축낼 수 없어서 일주일에 3~4번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오빠 때문에 한국을 알게 됐다는 직장인에게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한국어를 가르쳤다. 준공무원 신분의 그녀는 출장이 잦아 수업을 제때 못하는 날이 많았다.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언니가 일하는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함께 일하게 됐다. 보통 이자카야(居酒屋)를 우리말로 '선술집'이라 번역하는데, 가정식과 간단히 마실 수 있는 주류와 안줏거리를 파는 곳이다.
식당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 하나를 둔 사장님 내외가 저녁 시간에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가며 운영하는 곳이었다. 엄청 친절하신 분들이라 초면에도 구면같이 느껴졌다. 손님 대부분은 근처에 직장을 두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단골들이었다. 식구처럼 드나드는 손님들과는 해넘이 행사와 신년 행사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게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지만, 사장님 내외의 음식 솜씨만큼은 아주 특별했다. 제철 식재료에 눈을 뜬 것도 재료마다 지닌 특징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이분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이국 생활 중에 중매쟁이로 나선 사연
가지 맛이 한창 물오를 때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다란 가지도 있었지만, 당시로써는 처음 보는 둥근 형태의 가지가 반찬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도톰하게 잘린 가지에 칼집을 넣어 된장을 바른 뒤 튀겨내는 '가지된장튀김'은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였다.
가지밥, 가지찜, 가지볶음, 가지무침 등 한창 가지요리가 SNS를 점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지에 된장을 발라 튀긴 요리는 보지 못한 것만 봐도 비범한 레시피임을 알 수 있다.
가지와 된장?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그런데 여러 번 권하여 못 이기는 척 한 번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찌 이런 음식 궁합이 있을 수 있담? 사장님 내외는 타고난 천재 요리사가 틀림없다'며 음식에 반하고 실력에 감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장님 내외 솜씨를 잘 배우게 됐다. 한국에 돌아가면 손님들과 소통하는 일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포부도 갖게 됐다. 계절이 바뀌어 새 메뉴판으로 교체할 때 받아둔 묵은 메뉴판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집 단골손님 중에 중학교 교사가 있었다. 어느 날, 사장님 내외가 반 농담삼아 "좋은 사람 있으면 중매 좀 서" 하시길래 내게 한글을 배우는 공무원 제자를 점찍었다. 가지된장튀김은 처음이라기에 겸사겸사 가자고 조르니, 제자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선보는 자리의 분위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었다. 이름, 나이, 가족관계를 소개하고 나서 하는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땐 제자는 가지 같은 여자고, 중학교 선생님은 된장 같은 남자였다. 겉으로 봐선 안 어울릴 듯한데, 몇 번 더 봤더라면 필시 가지된장튀김같은 의외의 조합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쉬움으로 끝난 청춘남녀의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