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라는 작은 마을, 마을 속 학교와 진로 연결시켰죠"

[인터뷰] 자유학년제와 진로탐색활동 결합한 최정호 운봉중학교 교사

등록 2021.07.20 16:43수정 2021.07.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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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길목, 푸른 녹음이 감싸고 있는 남원의 운봉중학교를 찾았다. 운봉중학교는 남원 지리산권에 자리한다. 남원 지리산권에는 운봉면을 비롯해 산내·아영·인월 각 4개 면마다 중학교가 하나씩 있다. 4개 학교는 올해부터 자유학년제 수업 시간을 이용해 '마을연합 진로탐색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운봉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자유학년제를 담당하고 있는 최정호 교사를 만났다. 최 교사는 자유학년제를 담당하면서 '조금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희망제작소는 <내일상상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및 마을과 청소년 진로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 교사를 만나 마을과 아이들, 학교와 진로라는 연결고리 사이에서 그동안 다듬어온 고민을 나눴다.
 

운봉중학교 1학년 담임이자, 자유학년제 활동을 맡고 있는 최정호 교사 ⓒ 희망제작소

 
- 학교 풍경이 아름답다. 뒷산 같기도 하고 놀이터 같기도 하다. 
"말 그대로 놀이터이기도, 쉼터이기도 하고, 항상 자랑하고 싶은 곳이다. 애들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오고, 주말에도 와서 놀기도 한다. 밧줄놀이터는 작년에 <내일상상프로젝트> 활동으로 함께 만들었다. 옆에 트리하우스도 얼마 뒤 청소년과 마을구성원과 함께 만들었다."

- <내일상상 프로젝트>를 통해 놀이도 하고, 놀이터도 만들고, 영상 촬영도 하면서 여러 활동을 했다.
"여러 활동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났다. 프로젝트 결과물보다 사람들을 만난 게 더 값졌다. 마을 안에서 그런 활동이 자꾸 확장되어오다가 어느덧 학교에도 들어가 볼까 노크하는 단계까지 왔다."

- 프로젝트가 자유학년제의 수업인 '마을연합 진로탐색 활동'과 자연스레 연결됐다.
"경험론자라서 직접 이것저것 해보고 돌아와서 적용하는 추진력은 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상상력은 많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 길잡이 선생님, 운봉중학교 선생님이 벌이는 시도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걸 지켜보면서 학교 안에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2020 내일상상프로젝트 참여팀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밧줄놀이터. 운봉중학교 한쪽에 위치한 놀이터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놀이와 쉼을 제공하는 멋진 공간이 되었다. ⓒ 희망제작소

 
지리산이라는 작은 마을, 마을 속 학교와 진로

- 자유학년제와 진로탐색을 결합했다. 남원 지리산권 4개 중학교의 1학년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활동을 계획했다.
 "지리산권의 활동은 기존 수도권이나 도시 지역의 청소년이 접하는 진로 탐색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봐야 했다. 교육의 질 문제라기보다 이 지역에 적합한 자원과 공간을 연결하는 게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걸맞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자유학년제와 진로탐색을 결합했고, 자유학년제를 의미 있게 활용하자 싶었다."

- 자유학년제와 연계한 진로탐색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자유학년제는 기본적으로 4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주제 선택, 예술체육, 동아리, 그리고 진로 탐색. 이 영역을 수업 시수에 맞게 구성해야 하는데 영역별 개수 배정은 학교마다 다르다. 우리는 그중에서 '진로탐색' 분야에 집중하기로 계획했다. 올해 1학기에는 4개 중학교 친구들이 서로 안면을 트고 관계를 만드는 오프닝 활동을 세 차례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2학기는  4시간씩(격주), 총 10회차의 본격적인 진로탐색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 오프닝 활동으로 마을연합소풍을 진행했다.
"이번 활동은 산내중학교 1학년 친구들이 직접 자기 동네와 공간을 소개하는 활동을 직접 기획해 진행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도, 아이들이 1시간 남짓한 활동을 준비하려고 10시간 가까이 준비했다고 하더라. 잘했다고 칭찬했다.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어떠한 결과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2학기부터 진행되는 진로탐색 프로젝트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 여러 학교가 연합하는 활동을 기획할 때 주요하게 고려한 지점이 있다면.
"연합활동을 고민한 건 두 가지 지점이다. 먼저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는 기회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많이 배우는 대상은 친구들이다. 진로 고민에서도 또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런데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올해 1학년 전체 인원이 13명밖에 되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10년 가까이 한 학년에 스무 명 남짓인 친구하고만 만나는 거다. 뭔가 생각이 확장될 여지나 경험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다."

- 13명의 친구와 십 년 가까이 지내면 돈독하지만, 심심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경험할 수 있는 세상 자체가 단조로울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해  진로탐색 활동 무대를 마을로 확장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운봉면에 사는 아이들도 운봉에 뭐가 있고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운봉을 다른 학교 친구에게 직접 소개한다'라는 계기가 생기면, 막 공부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학교뿐 아니라 아이들이 마을 곳곳을 배워보고,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크고 작은 자극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지난 6월 23일 지리산권 4개교 연합 자유학년제 활동으로 진행한 마을연합소풍 ⓒ 희망제작소

 


자유학년제와 진로의 연결, 학교에도 색깔을 입힌다면

- 시험 대신 진행하는 자유학년제와 <내일상상 프로젝트>의 결합이 절묘하다. 정규 수업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공교육에서 혁신적 시도를 어디까지 허용할까'하는 부분이 고민됐다. 자유학년제라고 해도 외부 프로그램의 제약도 많고, 기본 교육과정 이수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자유학년제는 작년 겨울부터 기획했다. 4개 학교가 함께 교과를 맞추어야 하니까 미리 시간표를 짜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내일상상 프로젝트> 파트너 선생님, 청년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에서 함께 결합한 선생님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을 고민했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만이 아닌 선생님들도 점점 연결했다."

- 마을에서 배우는 진로탐색 활동의 가치를 학교와 교사 모두 배우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동의한다. 직업이나 전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학생에게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진로교육을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와 선생님들에게도 정말 중요한 메시지다."

- 기존 교육이 진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일까.
"중학교 아이들과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할 때 여전히 무조건 대학이 기준이다. 선택지가 많은 수도권 일부 지역 중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내려간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아직 이 지역에서는 내신 따기 쉬운 곳이 우선이다.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면 인문계고 가서 의사나 판사를 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특성화고 가서 기술 배워라'라는  말만 해주는 게 더는 맞지 않다고 본다. 나의 진로에 맞게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도 다양하면 좋겠다. 자유학년제도 그런 의미로 활용하고 싶고, 이렇게 작은 학교의 연합활동으로 학교에 색깔을 입혔으면 좋겠다."

- 작은 마을, 작은 학교이기에 연결이 가능한 게 아닐까. 혹시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시작이라서 너무 거창한 얘기는 부담스럽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다. 프로그램을 하다가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저희가 운봉중학교에서 왔다는 걸 아셨는지 당신 집도 운봉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운봉 살기 좋죠?" 그랬더니, "아니, 산내가 더 좋아. 물도 있고 깨끗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시더라. 이런 게 행복에 대한 또 다른 답이 아닐까. 내가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이고,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 그걸 알고 난 상태에서 나는 어떤 진로를 고민할 것인지 경험해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청소년 진로탐색 지원사업 <내일상상프로젝트>는 직업체험 위주의 단발적 진로교육에서 탈피해, 청소년이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서 직접 창의적인 일을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프로젝트다.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2021 내일상상프로젝트>는 학교 및 마을과 청소년 진로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해당 인터뷰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지역청소년 #진로탐색 #내일상상프로젝트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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