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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박 살 때 이걸 꼭 챙겨갑니다

수박 망 하나도 알뜰히 재활용... 덜 쓰고 덜 버리는 삶을 위한 나만의 실천법

등록 2021.07.24 18:58수정 2021.07.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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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양한 수박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양한 수박김준정

수박을 하나 골라 계산대에 내려놓자 사장님이 말했다.


"1만1900원입니다."
"딱 보면 얼마짜리인지 아세요?"
"그럼요, 크기가 다르잖아요."
"아니에요, 9900원 중에서 가지고 왔어요. 그새 좀 자랐나 봐요."     


하하하, 과일가게 사장님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손님이라서 뭐라고 할 수도 없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실없는 줄 알지만 가격표가 없는데도 척척 가격을 맞히는 사장님이 신기해서 그랬다.     

사장님이 수박 망을 꺼내려고 할 때다. 나는 "잠시만요!"를 외치고 장바구니에서 지난번에 쓰고 넣어둔 수박 망을 꺼냈다.      

"저 올여름에 이거 하나만 쓸 거거든요."

아예, 하면서 사장님은 어이없지만 손님이어서 뭐라고 할 수 없다는 아까 그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올여름 동안 사용할 수박 망
올여름 동안 사용할 수박 망김준정
 
'이건 아니다' 싶어, 내 삶을 바꿨습니다 


인터넷 쇼핑으로 탄산수 20병을 사고 죄책감이 들었다. 한 병에 350그램인 탄산수가 20병이면 7킬로그램. 그걸 트럭에 싣고 내려서 우리 집까지 배송하기까지 들고 내렸을 택배기사님을 생각하니 탄산이 목에 켁, 하고 걸리는 것 같았다. 늘어가는 빈 병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딸과 나는 치즈를 올린 닭발을 좋아한다. 지난번에 마트에 갔을 때 닭발을 사려고 했는데 온라인 구매를 한 것보다 비싸서 그냥 내려놨다. 다시 온라인 구매를 할까? 했지만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과 함께 배달이 될 걸 상상하니 내키지 않았다.


아이스팩은 곧장 쓰레기통에 직행할 거고(아이스팩을 동사무소에서 가져가면 종량제봉투로 바꿔준다는 걸 몰랐다), 스티로폼 박스는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식품을 살 때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구매 이력이 있는 인터넷 상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가 5개에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는 걸 보고 나는 또다시 흔들렸다.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내게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는 소소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간신히 참았지만 어떤 날에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만이라도 쓰레기를 줄여보기로 마음먹었다. 비 오는 날 은행에 갔을 때 우산 비닐을 재사용했고 음료수는 대용량으로 구입했다. 인터넷 쇼핑보다는 집 근처 마트를 이용하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다.     

산에 갈 때 내 차를 이용하는데 산행 팀원을 위해 긴 컵 네 개를 항상 준비해서 커피를 마신다. 갑자기 커피를 사게 될 때를 대비해서 자동차 콘솔박스에 텀블러를 따로 하나 넣어두었다. 한 번은 텀블러가 없어서 일회용 컵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게 되었는데 그 컵을 헹궈서 콘솔박스에 넣어두기도 했다. 일회용 컵을 아예 쓰지 않는 게 힘들다면 최대한 많이 쓰는 것도 방법이다 싶어서다.

5년 전 지리산 종주를 갔을 때 만난 대장님은 "종이컵, 나무젓가락은 상갓집 갔을 때나 쓰고 산에 올 때는 시에라 컵과 수저를 준비하라"고 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장님의 수저통을 보는데 간지가 흐르는 게 나도 산악인이 되려면 수저부터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이 들었다. 나무젓가락, 종이컵이 다 나무로 만드는 게 아닌가. 산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대상을 헤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는 건 아껴주고 보살피는 거다. 내 삶을 떠받치는 것들도 돌보아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폼 나는 산악인의 수저와 씨에라 컵
폼 나는 산악인의 수저와 씨에라 컵김준정
 
내가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는 이유 
    
일회용품 사용은 갈수록 많아져서 무서울 정도다. 애호박을 하나씩 스티로폼에 싸고 랩을 씌운 걸 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껍질을 벗긴 옥수수를 세 개씩 까서 스티로폼에 담아서 랩을 씌운 것도 그렇고.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마트에서 옥수수 한자루에 9900원에 샀다. 껍질을 까면서 세어보니 25개. 가끔 이렇게 운이 좋게 싸게 살 때가 있다. 그날 마트에서 싸게 나온 걸로 장을 보는 게 인터넷 쇼핑으로 이것저것 사는 것보다 저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식품을 온라인으로 사서 쟁여두었다가 버리게 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바로 사 와서 먹는 게 정답이다. 딸과 나는 옥수수 25개를 삼일에 걸쳐서 알뜰하게 먹었다.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박스를 펴서 버리고, 세탁소에 비닐과 옷걸이를 되돌려 주는 내가 좋다. 주변을 살필 수 있다는 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일회용품 #수박망 #온라인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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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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