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라는 말만 머금었는데도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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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가장 호들갑스럽게 하는 것은 여행 관련 피드들이다. 세상은 넓고 한국은 더 넓다. 한국 속에 프랑스도, 미국도, 일본도, 동남아도, 다 있더라. 서울시 프랑스구, 강릉시 태국구가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세계 여행은 꿈도 못 꾸지만 한국 속 세계로라도 떠나고 싶다. 내 안에 여행 욕망이 너울성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세월, 이번엔 꼭 보상받으리. 이거 봐, 다들 가는데... 뭘... 프로 집콕러는 좀 억울했다. 그리고 휴가철이지 않은가. '휴.가'라는 말만 머금었는데도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래, 우리도 가자!'라는 결심이 섰다. 그동안 오래 못 갔으니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맘에 드는 숙소는 일찌감치 마감이거나 가격이 좀이 아니라 많이 비쌌다. 나는 그 사실에 또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어머, 다들 돈이 많나봐...'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나도 있는 돈 없는 돈 쌈짓돈을 탈탈 털어 여행에 쏟아 붓기로 했다. 하지만 내 안의 갈등은 계속됐다. 이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걸까? 갔는데 비가 오면 어쩌지? 이 돈이면 거의 한 달 생활비인데... 근데 정말 가도 되는 걸까?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쇠뿔도 당김에 빼야 하는 법! 그래 인생 한 방, 아니 여행 한 방이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바로 엉덩이가 들썩여졌다. 여행은 준비 과정이 더 설렌다고 했던가? 오래간만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가슴속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든 것 같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야지. 바다가 보고 싶어. 맛집도 꼭 들러야지. 수영은 할 수 있을까? 아! 맞아. 작년 세일 때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은 수영복이 있었지. 단독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구나. 휘릴리~ 퓌릴리~~ 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왔다.
지역은 강원도로 정했다. 맘에 드는 숙소도 몇 군데 추렸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미적지근한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조금은 몽롱한 채로 하늘을 바라봐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철썩대는 파도소리는 여느 음악보다 멋질 것이다. 가족만 머무는 단독 풀빌라는 비싸긴 해도 그 값을 단단히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숙소 예약 버튼만 누르면 준비 끝.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여보 바쁜 여보를 위해 내가 다 알아봤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돌아온 답은 전혀 예상과 다른 답이었다.
"미안한데 아무래도 우리 휴가 못 갈 것 같아. 출연자 중에 코로나19 확진자랑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 상황을 두고 봐야 할 것 같아."
남편은 방송사에서 근무를 하는데 최근 방송 관련 확진자가 늘면서 직원들에게 더욱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작고 낮은 한숨이 쉬어졌다.
"어쩔 수 없지... 뭐... 애들이 많이 실망하겠다."
아니, 사실 내가 가장 크게 실망했다. 휴가 계획을 세우던 당시엔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 희망이 보이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느 변곡점 이후로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내 거리두기도 4단계로 상향됐다. 근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정대로 밀어붙였다면 지금쯤 불안에 덜덜 떨며 위약금과 위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예약 전에 무효가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끔, 아니 매일 하늘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