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광복 72년만에 처음 만난 양금덕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정신영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 아래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정신영 할머니. 2017년 8월
이국언
"집이는 몇 살 자셨소?"
"구십 시살."
"그런디 이렇게 젊어? 오메 각시여~"
먼저 차에 오르신 정신영 할머니가 부러운 시선으로 주금용 할머니를 맞았습니다.
"아니 뭣이 젊어라? 허리를 다쳐갔고 걸음을 잘 못 걸은디."
"그만하면 젊제. 나도 다른데는 괜찮은디, 이렇게 허리가 꼬부라져븐께 당체 꼼짝도 못 하고…"
지난 14일 전남 나주에 계시는 정신영(92) 할머니와 주금용(93) 할머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가는 길. 코로나에 꼼짝없이 댁에 갇혀 지낸 지도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오가던 경로당까지 문을 걸어 잠그다 보니 갑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이 초복이었는데, 잠시나마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도록 나주에 계신 할머니 몇 분을 점심 식사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정신영 할머니가 뒤늦게 차에 오른 이웃 마을 주금용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주위에 같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 살면서도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정 할머니는 2017년 8월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의 재판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은 직후였습니다.
뒤늦게 근로정신대 소송 나섰지만 재판 한 차례도 안 열려
정 할머니를 모시고 동행한 따님은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어머니가 무슨 일로 광주에 있는 이름도 낯선 사무실에 데려다 달라 하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따님은 지금까지 자녀들한테는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어머니의 10대 시절 얘기를 처음 듣게 됐습니다. 그 뒤 정 할머니는 2020년 1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