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 속, 그네에서 떨어진 아이는 어떻게 될까?

소설 쓰기에 도전한 나... 고소공포증 환자의 자전적 경험을 글로 풀어낼 겁니다

등록 2021.07.20 11:39수정 2021.07.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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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하늘 사진을 찍는다. 흐린 날 찍은 사진에 맑은 하늘을 합성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올 7월의 하늘은 합성용으로 쓰기엔 너무 아깝다. 한 폭의 명화에 버금가서 100점 만점에 천 점 아니, 천만 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하늘이 예쁜 날 보통은 카메라를 들고 집 근처 육교로 향한다. 하지만, 7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육교 대신 점찍어둔,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부족한 실력이 문제겠지만, 감히 육교 위에서 그 멋진 장관을 담을 자신이 없어서다. 옥상은 이사 와서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옥상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년 전 선배네 집에 놀러 간 일이 떠올랐다. 눈발 날리는 풍경을 제대로 보겠노라, 섣불리 15층 베란다로 나갔다가 낭만이고 뭐고 간에  간 떨어질까 봐 서둘러 물러 나왔었다. 밖을 내다보는 것보다 좀 나을 뿐, 거실에 앉아 있어도 심장이 조여오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고공행진 중이었다.
 
 7월 비 온 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아름다웠다.
7월 비 온 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아름다웠다.박진희
 
"우와! 우와! 멋지다~" 18층 아파트 옥상에 도착해 바라본 하늘은 땅 밟고 올려다보던 그 하늘과는 견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난간으로 근접해 사진을 찍으려니 발이 안 떨어졌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주저앉게 된다. 그렇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 눈에만 담아 가면 좋으련만.... 목적이 있어 감행한 일이라 조심스럽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몇 차례 셔터를 눌렀다. 
 
 내가 70년대에 다니던 '중앙유치원' 원사 전경이다.
내가 70년대에 다니던 '중앙유치원' 원사 전경이다.박진희
 
내 고소공포증의 단초는 1970년대에 다녔던 유치원의 '그네와 살구나무'일는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그네를 차지하기 위해 놀이터로 내달렸다. 그네 옆에는 담장 너머까지 가지를 뻗은 커다란 살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나뭇가지 꼭대기에 누가누가 높이 닿는지 앞다퉈 내기를 했다. 서열도 매겨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큰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선생님, ○○이가 그네에서 떨어졌어요."


이인자였는지 삼인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네를 꽤 잘 타던 남자아이가 살구나무 제일 높은 가지까지 그네를 구르다 공중제비를 돌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원사 안에 있던 아이들은 그네에서 떨어진 내막만 알면 그만이었던 데 비해, 직접 낙하 장면을 본 아이들은 피 흘리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목격하고는 울고불고 난리를 쳐댔다.

수십 년 전 찍은 졸업앨범과 사진 몇 장이 남아 있어 특별했던 원사 전경이며, 생일을 맞아 축하 파티를 벌인 일, 대학교 강당에서 무용 발표회에 나간 일 등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갖고 있는 사진으로 추억하는 것을 제외하면 유치원과 관련된 추억이라곤 '그네 사건'이 유일하다.


소설을 쓰게 생겼다

7월이 시작되고,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공주고마센터에 간다. 문화체육관광부, 충청남도, 충남문화재단이 주최· 주관하고 공주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2021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15회의 교육이 끝나는 10월 말쯤 문학 수업을 듣는 나는 한 편의 소설을 써내야 한다.

두 차례의 강의가 진행됐는데, 매주 작문 숙제가 주어지니 첫 강의를 듣고는 때려치울까도 생각했다. 매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고, 그러다 진짜 그만둘지도 몰라 고명하신 강사진 소개는 미뤄둔다. 

7월 6일에 있었던 첫 강의에서 한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은 금기시된 인간의 욕망을 글로 표현하는 거예요."

두 번째 시간에는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 자세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로도스 섬,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지 예시로 들어졌다. "관찰하라 그리고 생각(발상)하여 표현하면 글이 된다"라는 게 강의 요지다.

이번 주 제출할 과제 제목은 '나무'다. 나는 제일 먼저 떠오른 '내가 다닌 유치원의 살구나무'에 대해 쓸 것이다. 앞으로 나의 고소공포증과 살구나무 사건을 어떻게 엮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그보다 먼저 과제에 항복해서 중도 하차하지 않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첫 강의에서 강사님은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말투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말투의 특징은 잦아들고, 강의 포인트마다 가수 나훈아가 비쳤다. 특유의 입술을 '앙' 다문 표정이 똑 닮았다. 세 번째 강의에서 무엇을 듣고 얻게 될지 모르지만, 강사님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수업은 지루할 틈이 없을 거다. 

눈 가리고 아웅 하게 생겼지만, 이 나이에 혼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니 서둘러 이번 주 숙제를 끝마쳐야겠다.
#살구나무 #충청감영 포정루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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