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도둑심기,옮겨심기,무지하게자란,수확모종을 혼자 몰래 심는 사진, 잘자라도록 옮겨심은 사진, 무지하게 자란 바질, 수확.
김진국
바질은 성장이 빠르다. 장마에 오이 자라듯 빨리, 무성하게 자란다. 그런데 화분에만 키워본 경험이 오판을 낳았다. 넘치도록 기름진 땅에 구속 없이 뿌리 뻗은 바질은 그야말로 무지하게 잘 자랐다. 약간의 무서움과 희열을 느끼며 바질잎을 땄다.
바질은 꽃이 피기 전에 윗잎을 두루 따주는데 바로 아래 줄기에 양쪽으로 올라오는 새 순 바로 위를 따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새로 돋아난 순이 각각 자라나 바질이 더욱 풍성하게 된다. 이론에 집중하며 조심조심 한 잎 한 잎 따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와 아내는 손길에 거침이 없다.
나 : "알려드린 대로 살살 따셔야 해요...(ㅠㅠ)"
어머니 : "그렇게 따면 어느 천년에 다 따냐~?"
아내 : "다 먹기나 해~."
잠깐 사이에 제법 큰 검은 비닐봉지 세 개가 가득 찼다. 상추며, 오이며, 호박이며, 가지며... 더 주고 싶은 부모님 마음만큼 봉지가 또 채워졌다. 덕분에 시간 잘 보냈다는 부모님 말씀을 뒤로 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알아서 하라는 아내, 그래 결심했어
아내는 늘어난 살림 실력에 더해 최근 빠져있는 미니멀라이프 생활 때문인지 시골에서 받아온 채소 따위를 버리는 것 없이 알뜰하게 먹는다. 그러나 바질만큼은 선을 그었다.
"당신이 알아서 해~."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없고... 너무 많은 바질을 어찌할지 막막했다.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저녁까지 수를 내야 했다. 결국 아내가 거래하는 당근시장에 무료로 나눠주는 것으로 2/3의 물량을 해결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아쉬운 마음이 계속 남았다. '바질 페스토 해 먹게 넉넉하게 주세요'라는 당근시장 '호호님'의 글을 보고 결심했다. 나도 바질 페스토를 만들리라!
그렇게 된 것이다. 늦은 시각 도착한 자취방에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바질과 견과류와 마늘과 파마산 치즈를 갈고 레몬을 짜 넣어 자정까지 한 솥(적당한 그릇이 없어 작은 압력밥솥의 솥을 이용했다) 가득 바질 페스토를 만든 것이다.
양이 너무 많았으므로, 간 마늘을 그렇게 하듯, 넓적하게 펴서 칼등으로 홈을 내어 냉동실에 얼렸다. 나중에 한 칸씩 떼어내어 올리브기름과 후추와 소금을 곁들여 먹으리라.
새벽 0시 45분. 무척 피곤했지만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었다. 솥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바질을 손가락으로 알뜰하게 긁어 쿠키 위에 얹었다. 맥주를 먼저 마실까 하다가 바질(과 쿠키)를 먼저 먹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바질이 주인공이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같은 생각 가진, 더 유능하신 분들 의견 듣고 싶습니다
공유하기
47살 자취생이 오밤중에 바질 페스토 만든 사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