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 3300선을 돌파해 3302.84에 마감한 6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활짝 웃고 있다. 코스피가 지난 1월 사상 처음으로 3000선, 3100선, 3200선을 차례로 돌파한 뒤 약 5개월에 걸친 조정 국면을 지나서 3300선에 올라섰다.
연합뉴스
성미씨(가명)는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매일 수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급식실은 언제나 수증기에 유증기까지 섞여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조리복에 모자로 머리를 감싸고 손과 발에는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한다. 여기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고무 앞치마까지 둘러야 했다. 이렇게 온몸을 칭칭 감고 밥, 국, 튀김 등 고온이 필요한 음식을 조리해야 했다.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조리사들의 중노동으로 만들어진 식사를 학생들이 먹고 나면 설거지와 조리실 청소가 기다린다. 이마저 끝내고 나면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그동안 꺼내 볼 생각조차 못 한 스마트폰을 켜고 부재중 통화와 쌓여있는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나면 잠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런저런 신변잡기식 검색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주식투자 관련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주가지수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떠들었다. 대형 증권사에 근무한다는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지금이 적기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수백억을 벌어 회사를 그만뒀다는 대기업 사원 이야기도 들렸다. 어떤 펀드매니저는 지금을 일컬어 "건국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기"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성미씨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주식투자를 하고 싶어도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안다 해도 투자할 돈도 없었다.
어느 날 급식실 동료가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친한 언니가 귀신같이 투자를 잘하는데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대출이자에 월 3~6%의 수익률을 얹어 준다고 했다. 월 3%만 잡아도 연 36%의 수익률이었다. 동료는 1억 5천만 원을 투자했다고 했다. 월 3% 수익이면 연 5400만 원이었다. 수익률이 좋아서 6%를 받는다면 연 1억 원이 넘는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급여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익률이 좋다고 해도 "설마 전문 투자사도 아니고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주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축은행 대출 금리가 연 20% 가까이 되니 최소 연 40~100%의 수익률을 내야 가능한 투자였다.
귀신같은 투자자 언니
선미씨는 귀신같은 투자자 언니 이야기를 그렇게 흘려들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 서너 달이 되어감에도 투자했다는 동료는 꾸준히 매월 수익을 정산받는다고 했다.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돈만 400~500만 원이라고 했다. 불현듯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미씨가 관심을 보이자 곧바로 귀신같은 언니 일을 돕는다는 여성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스마트폰을 새로 한 대 맞추고 공인인증서와 은행 어플을 설치해 놓으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들이 알아서 대출을 받아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못내 불안했던 선미씨는 5000만 원 정도만 투자하겠다고 했다. 우선 5000만 원만 하고 수익률이 좋으면 더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스마트폰을 받으러 오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날 선미씨의 학교에서 받아간 스마트폰만 6대였다. 그리고 대출에 필요하다며 신분증도 촬영해 갔다. 그런데 한 달이 넘게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통장을 계속 확인해 보았지만, 수익금도 입금되지 않았다. 선미씨와 함께 스마트폰을 넘긴 동료 다섯 명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먼저 투자했던 동료마저 그달 수익금이 입금되지 않았다고 했다.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알아봤다. 선미씨 명의로 6개의 저축은행에서 1억 5000만 원이 넘는 대출이 발생해 있었다. 그리고 대출금은 선미씨 통장에 입금된 즉시 특정 계좌로 송금되었다. 귀신같은 투자자라는 언니도, 그 언니를 돕는다는 여자도 연락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에서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미씨와 같은 고소장이 이미 13건이나 접수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관련 피해자가 100명 가까이 되었고 이르고 피해액 또한 10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변호사를 찾은 선미씨는 "그 돈 한번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아니 저는 은행이랑 전화통화 한번 안 했는데, 제 명의로 수억 원의 돈을 대출해 주는 게 말이되요?"라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인증서를 통한 전자서명은 전화통화와 같은 추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유효한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었다.
"전자문서에 의한 거래에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에 의하여 본인임이 확인된 자에 의하여 송신된 전자문서는, 설령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송신되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규정된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전화 통화나 면담 등의 추가적인 본인확인절차 없이도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다257395 판결)
사기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